토사구팽(兎死狗烹).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사성어다. 토끼를 잡은 사냥개도 쓸모없으면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필요있을 때 써먹고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으면 발길로 내치거나 목숨까지 빼앗는 것이다.
지난 17일 별세한 김재순 전국회의장은 ‘토사구팽’의 교훈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1992년 대선당시 민정당계였던 그는 3당합당으로 들어온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며 당선시키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음해 공직자 재산 공개 과정에서 부정축재 의혹을 받으며 물러나야만 했다. 그가 남긴 말이 ‘토사구팽’이었다. 생전에 김영삼을 용서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여러 나라가 난립하던 춘추시대. 월나라가 패권을 잡도록 신하 범려와 문종이 활약했다. 공적으로 큰 감투를 썼지만 범려는 월나라 왕 구천을 믿지 못했다. 월나라를 탈출하며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 피신하도록 충고했다. ‘새 사냥이 끝나면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 우물쭈물하던 문종은 구천으로부터 반역 의심을 사 결국 자살한다. 토사구팽의 유래다.
중장년들은 그동안 살면서 여러차례 크고작은 토사구팽을 겪었다. 믿었던 친구의 빚보증을 서줬더니 막대한 빚만 남기고 사라졌다. 재기한 친구는 나를 몰라라 한다. 상사대신 구정조정이라는 칼을 대신잡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으나 이제 너 필요없다며 강퇴당했다. 한탕한 모든 책임을 치고 교도소까지 갔으나 의형제같은 선후배들이 사라졌다. 어찌보면 인생이란 아는 사람들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것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인간은 팽을 당하기까지 자신만은 팽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토사구팽’의 교훈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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