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세트 주세요" (검사의 세계1)
"여기 한 세트 주세요" (검사의 세계1)
  • 김별
  • 승인 2019.01.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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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밑으로 다 남아. 입가심이나 하러 가자."
K 선배가 1차 회식 후 초임들을 불러세웠다. 긴장이 풀리면서 알콜기가 확 올라왔지만, 부임 1일차 어리버리 초임들에게 7년 경력 선배말을 거역하는 건 언강생심이었고,맥주 한두 잔 입가심 정도야 했다선배가 어리버리 7명을 데리고 간 곳은 회사 근처에 있는 삐걱거리는 문, 어두침침한 조명, 테이블 3,4 개 화장실은 열쇠를 받아 가야 하는 그야말로 허름함의 요건을 모두 갖춘 까페였다.이름이 아다지오였던가. 거침없는 태도로 테이블 중앙에 K선배가 자리를 잡자 어리버리들은 신속하게 기수,나이, 둘이 같으면 생일 순으로 앉았다. 입사 하루만에 어디서나 좌석배치, 심지어 보행 시 서열도 중요하다는 걸 터득한 터였다.
"
여기 한 세트 주세요"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는 과정은 없었다. 잠시 후 배달된 '한 세트'는 썸씽 스페셜 1, 맥주 3, 김 몇 장과 멸치 몇 마리 그리고 폭탄주를 올려 놓기에 알맞은 크기의 접시, 그 위에 깔 면 손수건이었다폭탄주의 제조 및 음용법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맥주를 7부 채운 후 양주 7부 잔을 투하하고 반드시 두 손으로 폭탄 잔을 주고 받되, 잔 받침은 절대로 터치 금지이며 원샷 후 잔 밑 부분을 파지해 흔들어야 맥주잔과 뇌관인 양주잔이 부딪치며 맑고 청량한 소리가 난다는 거였다.
원샷 잔을 돌려 받고 다음 잔을 만들 때까지 K선배는 면 손수건이 깔린 접시에 잔을 거꾸로 올려 놓았다.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벌주라는 훈시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나름 위생조치였다. 그 거품이 빠질 때까지가 쉬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사이 6~7명 회동 때는 폭탄주 합 100잔이 정석이고, 폭탄주에 얽힌 전설 등등을 들으며 두 세트인가를 비우고 나서야 그 날의 '공식'일정은 끝났다. 폭탄주는 모인 사람 수 만큼 마시는 것이 원칙이니 2차에서는 9(8+ 1,3,5원칙에 따라 꼭지점 1)을 마신 셈이다. 1,2차 합치면 오리지날 폭탄만 16,7? 그럼에도 K선배는 미진한 사람 남으라 했고 나를 포함 어리버리 두 셋이 손든걸로 기억한다.

※필자 김별변호사는 대한민국 검사, 사기업 임원을 거쳐 현재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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