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잡아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검사의 세계5)
검사는 잡아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검사의 세계5)
  • 김별 객원필진
  • 승인 2019.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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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과 돌 던지는 것은 폭력이나 숨어있는 본질을 보아야
검사들이 근무하는 서울 고등검찰청. /뉴스1 제공
검사들이 근무하는 서울 고등검찰청. /뉴스1 제공

밤새운 씨름 끝에 고소인은 결국 자신의 고소가 무고임을 자백했다.
"검사님... 억울합니다. " 고소인이 말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고 3년간 경찰, 검찰을 쫓아다니며 하소 연 했지만 범죄혐의가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정작 사기꾼은 따로 있는데 제가 처벌받아야 하나요. "
"뭐가 억울하다는 것입니까. 무고는 중한 범죄입니다."피해가 있더라도 없는 사실로 남을 처벌해 달라는 것 은 온당치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런 권리는 없습니다. " 검사는 '권리'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고소인 딸이 울음을 터뜨렸다. "검사님 ..아빤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습니 다. 이 일로 아빠 몸무게가 몇년 새 15 킬로나 빠졌 어요. 부디 잘못이 있더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청장실.. 부장 결재는 쉽게 통과했고 이제 청장 도장 만 찍히면 무고 인지 구속 1건이 그 달 실적에 보 태질 것이다. 계속 부인하다 비로소 자백했고 사안도 무거웠다. 법원 영장 발부는 문제 없었다.
김검사.. 평소와 다르게 한참동안 기록을 이리저리 뒤지던 청장이 이윽고 말했다.
김검사.. 이 사람은 평생 모은 재산을 사기꾼에게 뜯긴 사람이다. 사법적으로는 죄가 된다도 할 만한 증 거가 없어 무혐의 처분했지만 검사가 수사를 잘못해 처벌 못 했을 수도 있다. 구속하는게 맞나.
뜻밖이었다. 평소 서슬 퍼렇고 추상같은 검찰을 강조하던 분이었다.
"청장님.. 그래도 무고는 엄히 처벌해야 합니다. 피해 를 입은 것은 맞지만 그 건과는 별개입니다. 더욱이 계속 부인하던 자입니다. 구속하지 않으면 나중에 진술을 바꿀 것입니다." 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검사.. 맞다. 무고는 큰 죄다. 그러나 검사가 잡아 넣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 사람을 잡아 넣으면 과연 승복할까. 좀더 시야를 넓혀 뭐가 형평에 맞는 지 봐야 한다. 나 같으면 무고로 입건도 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승복, 넓은 시야, 형평.. 검사는 반려된 기록 을 들고 나와 내내 고민했다. 계속 부인하던 무고사범을..그것도 시가 1억 상당의 땅을 문서를 위조해 가져갔다고 허위 고소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을 명분이 있을까..그 때였다. 엄혹했던 80년대 중반, 대학 써클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항상 현상과 본질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것을 폭력적이라고 나무라지만 그것은 현상에 불과하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그 순간 뒤죽박죽 얽혀 있던 실매듭이 한 올 한 올 풀리는 느낌이었다. 무고에 이른 것은 현상이었고,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렸음에도 어쩌면 무능한 검찰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사건의 본질이었 다.
 청장과 대학 선배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검사에게는 죄지은 자를 잡아 넣을 권한이 있지만 형평에 맞는, 그래서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게 처분할 책임 과 사명이 더욱 막중하지 않은가..
 유치장에 있던 고소인을 불렀고, 몹시 피곤했지만 검사는 2시간 넘게 고소인이 전 재산을 날리게 된 사정 을 들어줬다. 왜 처벌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왜 이번에 무고로 구속하지 않는지 설명해 주었다.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딸과 고소인을 보내 며 검사는 뭔가 뿌듯한 성취감이 들었다. 고시 공부 할 때, 하루 계획한 분량을 마치고 불 꺼진 도서관을 나서면서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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