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74년 인천여상, 전통의 명문 부활에 앞장”
“개교 74년 인천여상, 전통의 명문 부활에 앞장”
  • 이두 기자
  • 승인 2019.04.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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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상 문해자 총동문회장 인터뷰… “모두 참여하는 동창회로”
신입생 확보 적극 앞장… “교육청은 신입생 줄이고 시설 개선을”

 

문해자 인천여상 동문회장. 명문 전통고 부활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문해자 인천여상 동문회장. 개교 74년 명문 전통고 부활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사진/인천여상 총동창회 카페 제공

 인천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명문고가 여럿 있다. 1945년 개교한 인천여자상업고교(이하 인천여상)도 전국에 널리 알려진 유명 학교였다. 그러나 원도심 쇠락과 시대의 변화 등으로 지난해 개교 처음으로 신입생 미달 위기를 겪었다. 동문들이 발벗고 나서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인천여상 부활의 한가운데 문해자(61·20회졸) 총동문회장이 있다. 그를 만나 인천의 자부심이었던 인천여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보았다.
-먼저 어떻게 총동문회장을 맡게 됐는지 궁금하다.
“18년 전 삼성생명 지점장으로 근무 중일 때 모교 가용현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사례집을 만들게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열 명이 넘는 동문들의 글이 책으로 만들어져 재학생들의 교재로 쓰였다. 당시 재학생들에게 인천여상인이라는 자부심을 준 것 같다. 이후 인천여상 운영위원과 총동문회 부회장, 감사 등 임원을 하다가 20186월 총동문회장을 맡게 되었다.”
-학교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난해 학교 73년 역사상 처음으로 신입생 미달이라는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교무부장이 동창회에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모교 현관 옆 동문 쉼터방에 사무실을 만들고 매주 수요일 출근하며 학교와 소통하고 동문들한테 소식을 알리는 일을 6개월간 했다. 인천시내 금융권에 근무하는 후배 동문들을 만나서 학교 상황도 알리고 중학교 3학년생들한테 홍보할 때 도와달라는 부탁도 했다. ‘미래 메이커 스쿨행사때 중학교 3학년 300명이 학교 방문 시 동문들 50명이 부스에서 상담하는 행사도 같이 했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
-학교 자랑 좀 해달라.
인천여상은 올해 74년이 되는 명문학교다. 1945년 
광복직전 개교 당시에는 월미여중이었다. 일본의 신사자리에 터를 잡은 학교로 인천 내항과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지금까지 있다. 19741학년에 입학할 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차관으로 교실마다 40명씩 정원으로 개인 캐비넷을 만들어주고 전동식 타자기로 최고의 시설을 만들어 주었다. 서울여상, 인천여상, 부산진여상, 대전여상 4개 학교로 기억한다. 그만큼 대단한 학교였다. 그 당시 다른 학교는 정원이 60명이고 시설로나 모든 면에서 우리와 차별됐다. 많은 자부심을 갖고 학교를 다닌 것으로 기억된다.”
-40년전 학교랑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 당시는 생활이 어려워 여상을 선택한 우수한 인재가 많았다. 지금은 모두 대학을 지원하는 상황이라 성적이 떨어지고 인원도 많이 적어져서 신입생 수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학교 건물이 너무 낡아서 아이들이 와서보고 선택을 잘 안하는 것이 안타깝다. 신입생을 줄여야하고 시설 개선이 절실하니 인천교육감께서 조치해 주셨으면 한다.”
-어떤 동창회를 만들고 싶나.
동창회하면 성공한 사람들만의 모임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나는 발로 뛰는 동창회장이 되려한다. 모두가 같이 참여하는 동창회로 만들려고  한다. 1년에 1만원씩 동창회 통장에 넣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1000명이면 1000만원 모금이 가능하다. 지난해 21개 학교를 순회했다. 올해도 9월에 22개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문해자 회장과 재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해자 회장과 재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후배 재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나.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과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당시는 시험을 쳐서 입학해야만 했다. 인천여상 입학 당시 성적이 매우 낮았다. 열심히 하다보니 전교 200등이 됐다. 졸업 후 사회에서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살다보니 동창회장이 됐다. 어린 학생들에게 나도 동창회장이 됐으니 여러분은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한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는 지.
졸업 후 30년 홈커밍때 만난 인천여상 친구 10명을 12년째 매달 모임을 하면서 1년에 한번 해외여행을 한다. 만나면 너무 행복하고 헤어지면 또 보고싶고 늘 고등학교 시절 때처럼 웃다가 헤어진다. 죽는날까지 함께 하고 싶다.”
-모두가 자랑스럽지만 특히 활동이 두드러진 동문은.
“동문회원이 4만 3000명이다. 내가 만난 동문 금융권 지점장 국민은행 2, 농협 9, 수협 4, 삼성생명 지점장, 새마을금고 전무 2, 해양경찰서장 1, 대표이사, 증권회사 지점장, 부지점장들 등 현직에 수십명에 달한다.”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물포고 출신인 박남춘 시장의 친구들과 내 남편이 가깝게 지낸다. 과거 시장님이 국회의원 출마할 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시장님은 인천여상과 인천기계공고를 한번 방문해 달라. 특별 강연을 해주시면 특성화고 학생들의 자부심이 생겨나고 희망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미니)문해자 회장 인생관 남편·친구들은 서로를 항상 칭찬하라
     인천고 출신 동갑내기 남편과 일찍 결혼 금슬 만점

문회장과 정용만 약혼식 사진.
문회장과 정용만 약혼식.

문해자 회장은 25세 때인 1982년 동갑내기인 인천고 76회인 정용만씨와 결혼해 친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3이었던 19767월 동화상협 경리과에 취직을 했다. 어느날 인천사무소 신입사원 이력서를 보았는데 버스정거장에서 가끔 보던 인고 학생이었다. 잘생겨서 눈에 익었는지 인천사무소에 근무하던 동창 애가 같이 중앙제과에서 보자고 해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났다. 그는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시아버님 되실 분이 나를 엄청 이뻐하셨다. 남편 군에 있는 사이 양가 부모님들이 만나서 약혼식을 결정하여 남편이 일병 때 약혼했다. 남편 친구들은 같은 동갑내기로 19살에 만나서 지금까지 만나다보니 내 친구 같은 느낌이다.
-남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나를 많이 신뢰해서 내가 하는 일을 협조를 잘해주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해서 가정 경제를 힘들게 하지 않고 솔직하고 바른생활을 하며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 단점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상처를 잘 받는다.”
-40년 가까이 결혼 생활하면서 중장년 부부들은 어떤 사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첫째 친구같은 사이, 서로 부담주지 않고 배려해야 한다. 둘째 각자의 취미 생활을 격려해주고, 셋째 지나온 세월을 서로 칭찬해주기다. 예를 들어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온 당신 훌륭해요’ ‘자식들을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등이다.”
-재학 당시 인천의 고교는 어땠다고 기억하나.
“당시는 시험을 쳐서 입학했기에 제물포고와 인천고, 여자는 인일여고 인천여고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갔다. 실업계로는 인천여상과 인천공고가 유명했다. 제고생은 샌님같고 아저씨같았다. 인고생은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 것같아 인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60년 넘게 살면서 나름대로의 인생관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생각한다. 한때 좋은 일이 나를 어렵고 하고 잠시 불편했던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돈없이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일곱가지 보시인 무재칠시(無才七施)를 실천하려 한다. 환갑이 넘은 나이는 여유가 있는 나이이며 행복한 나이인 것 같다. 책임감도 없고, 숙제도 없어서 좋다. 친구들의 모임에서는 이제는 서로 칭찬만 했으면 한다. 만나서 기분이 좋아야 계속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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