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생 심상정, 한국 진보의 깃발을 굳건히 흔들다(돼지시리즈10)
1959년생 심상정, 한국 진보의 깃발을 굳건히 흔들다(돼지시리즈10)
  • 최용희 기자
  • 승인 2019.06.06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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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3선으로 ‘한국의 잔다르크’
노동운동의 상징, 유시민과 운동권 함께

 

1959년생 심상정의원(왼쪽), 한국 진보 정치의 핵심 인물이다. 사진=정의당 홈페이지.
1959년생 심상정의원(왼쪽), 한국 진보 정치의 핵심 인물이다. 사진=정의당 홈페이지.

1959년생으로 3선 국회의원 심상정(정의당) 한국 진보의 상징이다. 그는 정치판의 잔다르크를 연상케한다. 여성으로서 결코 굴하지 않으면서 진보의 목소리를 확실히 내는 정치인이다. 정의당은 아직도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바뀌어 그의 역할과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갑이 지역구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 본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였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심상정은 2004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한다. 국회 예결위와 환노위 등에서 활동했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역구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갑이다.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노동운동을 했다.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 1985'서울노동운동연합'의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1986년 인천 5.3 운동 이후 서노련 지도위원이 되었다.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결성에 힘을 보탰고, 1990'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지내 노동운동가로서 입지와 기반을 확고히 했다.
1995'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금속산업연맹'의 사무처장을 역임하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반을 닦았다. 2000년대초 금속노조가 정식으로 설립되자 다시 사무처장을 역임, 노동운동을 계속했다. 마침내 2004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의 자리에 오른다. 17대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두드러지게 활약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에 적극 나서면서 벌인 논쟁들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석패했다. 이후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조승수 등과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운동을 벌였다. 진보대통합 과정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고양시 덕양구 갑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해 5월 진보정의당 창당에 힘을 보탠다. 이후 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동하다 20156월 원내대표를 마치고 당대표 선거에 참여, 결선에서 노회찬 후보를 누르고 당선, 당대표가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에 압승을 거두며, 한국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중진 의원으로 우뚝 섰다.노회찬과 함께 진보정당의 최대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심상정은 1959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태어났다. 서울 은평구 대조초, 충암여중, 명지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유시민과는 대학 동기로 운동권 활동을 함께 했다.
대학 동기 유시민에 따르면 심상정은 운동권에 참여하면서 지도부에 들어가기를 바랐으나, 당시 시대상 여성이 어떤 조직의 주축이 되는 것은 운동권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화가 잔뜩 난 심상정은 아예 운동권을 돌아다니면서 "옥바라지만 시킬 거면 내가 데려간다. 남자들 틈에 치여서 크지도 못한다. 내가 키운다"며 여자들을 죄다 모아서 여자들로만 구성된 서클을 만들었고, 이때 만든 여성 서클을 데리고 후일 구로지역 노동조합 연대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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