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의 졸업식…"행렬아, 늦게와서 미안하다"
40년 만의 졸업식…"행렬아, 늦게와서 미안하다"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0.05.17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 당시 금오공고 재학...광주5,18항쟁때 숨져
금오공고 동기들, 5,18묘지 찾아 졸업장 전달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금오공고 동창들이 염행렬씨의 묘에 명예졸업증서를 놓고있다.2020.5.16/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행렬아, 늦게 와서 미안하다. 늦었지만 졸업 축하한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16일 염행렬씨의 금오공업고등학교 동창들이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40년 만에 명예 졸업을 한 친구에게 졸업장을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당사자는 말이 없었다. 5·18민주묘지에는 '행렬아'를 나지막히 부르는 금오공고 금속과 친구들의 애달픈 목소리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명예졸업증서. 위 사람은 본교의 전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지만 권력에 맞서 용기있게 저항하고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영예를 회복하기 위해 본 증서를 수여함.'

금오공고 교장의 직인 찍힌 명예졸업증서를 꿈을 채 펼치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친구의 묘역 앞에 놓자 친구들은 모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염행렬씨의 묘에 '명예졸업증서'가 놓여있다.2020.5.16/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염씨의 동창 고현길씨는 "참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르지 않았나 싶다. 벌써 40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행렬이에게 너무 늦게와서 참 미안하다. 비록 직접 전달하지 못했지만 오늘 행렬이에게 이렇게 졸업증을 전하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염씨는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초·중·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고 전국의 인재들만 갈 수 있는 금오공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금오공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 설립한 군사학교이다. 형편이 어렵지만 성적이 우수한 전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국방부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며 군사 인재로 양성했다. 금오공고는 대통령이 세운 학교, 국방부 전액 장학금 등으로 전국의 인재들이 몰린 명문이었다.

하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는 대신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졸업 직후 5년간 하사관 의무 복무를 해야했고 학교 내 군기가 상당히 센 편이어서 중도 이탈자가 많았다. 행렬씨 역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겠다"며 2학년 1학기에 광주로 가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5월 광주에서 5·18항쟁이 일어났다.

염행렬씨는 항쟁 마지막날인 80년 5월27일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그의 나이 17살이었다. 또래들이 꿈을 위해 달려갈 때 염씨는 최루탄을 맞고 총을 들었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금속과 반장이었던 고승연씨는 같은 반이었던 염씨를 "키는 작았는데 축구를 잘했다. 머리도 좋고 참 '똘망똘망'한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염행렬씨의 명예졸업식을 진행하는 친구가 생각에 잠겨있다.2020.5.16/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그는 "입학하자마자 군사훈련을 받기 때문에 1학년들도 총을 쏠 줄 알았고 총을 분해 조립까지 할 수 있었다. 행렬이가 성격도 대차고 총도 다룰 수 있어서 시민군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대중 금오공고 7기 동기회장은 "행렬이는 그때 우리말로는 '전라도 기질이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뭐랄까 불같은 성질에 열정이 넘치는 친구였다. 기숙사에서 TV를 보는데 그 당시에 '광주사태' 사망자 명단이라고 이름이 쭉 나왔다 '염행렬(금오공고 2학년)' 이렇게 자막이 뜨는데 가슴이 철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염씨가 경상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고향은 보성인 탓에 광주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도 염행렬씨의 정보는 많지 않았다.

친구들이 염씨의 명예 졸업식을 추진하게 된 것도 염행렬이라는 학생을 모두가 기억해주길 바래서였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둔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금오공업고등학교 7기 동창생들이 5·18시민군으로 생을 마감한 염행렬씨의 명예졸업식을 진행하고 있다.2020.5.16/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사실 처음 '염행렬, 금오공고 2학년생이라고 사망자 명단이 나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교 이름이 지워졌었다. 아마 국방부 장학생이 군인들에 맞서 총을 들었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또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만 하더라도 지역감정, 5·18은 폭동이었다는 가짜뉴스들로 명예졸업식을 추진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김 회장은 "어머니와 누나가 있고 어머니가 1925년생이라는 것만 안다. 시민들을 지키기위해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도청을 지켜낸 행렬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친구인 우리라도 행렬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축하와 축모를 함께 준비하는 마음은 참 복잡했지만 늦게라도 우리 친구가 졸업을 하게 돼서 참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