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쟁이' 신춘호, 자본금 500만원서 2조 회사로 어떻게 키웠나
'라면쟁이' 신춘호, 자본금 500만원서 2조 회사로 어떻게 키웠나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1.03.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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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로 별세..1965년 농심 창업해 식품산업 뛰어들어
젊은 시절 신춘호 농심 회장(오른쪽)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 News1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2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율촌(栗村)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자는 평소 자신을 '라면쟁이'와 '스낵쟁이'라 불렀다. 평생 라면과 스낵을 만들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수많은 히트상품을 남기며 'K-푸드' 초석을 닦고 떠났다.

신 회장은 1930년 12월1일 울산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옹과 모친 김필순 여사 사이 5남5녀 중 삼남이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9살 차이나는 형제 사이다.

부산 동아고와 동아대를 졸업한 그는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58년에 롯데 부사장을 맡았던 그는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농심의 전신 롯데공업을 세우고 본격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신 회장은 산업화,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主食)이어야 한다. 값이 저렴하면서도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롯데라면을 개발, 출시한 신 회장은 곧이어 장수 제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국내 라면이 대부분 닭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탓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고기 육수 사용 '소고기라면'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71년엔 새우깡을, 1982년엔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을 출시시키며 연이은 성공을 거뒀다.

롯데공업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라면 사업을 반대했던 신격호 회장과 사이가 악화돼 사명에서 롯데를 떼고 '농부의 마음'이란 뜻으로 농심 브랜드를 만들었다.

1986년엔 신 회장은 자신의 성을 딴 스테디 셀러 신라면을 내놨다. 신라면은 현재까지도 100여개국에 수출하는 '효자상품'으로 불리고 있다. 신라면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2020년 미국 뉴욕타임즈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신라면 블랙)로 선정한 바 있다.

그는 이밖에도 짜파게티, 새우깡 등 자사 제품 개발 및 출시도 전면에서 진두지휘했다.

 

 

 

 

 

 

 

신춘호 농심 창업자의 중년 시절 모습(농심그룹 제공) © 뉴스1

 

 


그가 '라면 장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회사 설립부터 '라면연구소' 성격의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둔 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일본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는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체 개발을 강조했다.

1982년 안성공장 설립 당시에도 이 고집이 드러났다. 당시 그는 국물 맛에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 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했다.

연구개발에 방점을 둔 신 회장의 결단은 농심이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라면공급업체로 지정되는 성과로 나타났다.

농심은 2015년 5월 굵은 면발이 장점인 고급 짜장라면 짜왕을 그의 지휘 아래 내놨다. 고령의 나이에도 작명부터 기획, 출시의 전반을 지휘한 셈이다. 신 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고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했다.

농심은 신 회장의 리더십 아래 지난해 기준 매출 2조6398억원, 영업이익 1603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 앞선 지난 16일에서야 56년간의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 슬하에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부인) 등 3남 2녀를 뒀다.

농심은 신동원 부회장이 계속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농심홀딩스 지분 42.92%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난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신 회장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진다. 발인은 30일 오전 5시,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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