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시리즈6)1961년 44세 박정희 시대가 열리다
(516시리즈6)1961년 44세 박정희 시대가 열리다
  • 시니어오늘
  • 승인 202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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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최고의장으로 입법 사법 행정을 한손에 쥐어
​​​​​​​미국 방문해 케네디와 회담으로 정통성 인정받아

 

쿠데타 성공후 미국을 방문해 동갑인 케네디를 만나고 있는 박정희.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쿠데타 성공후 미국을 방문해 동갑인 케네디를 만나고 있는 박정희.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육군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뒤 권력을 잡는다. 그는 기존 정치권의 무기력함과 국민의 무관심 속에 큰 저항없이 쿠데타를 성공시켰고 미국으로부터도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1917년생인 박정희의 44세 젊은 장군의 시대가 열렸다.
◆입법 사법 행정권을 한 손에
5월 15일밤과 16일 새벽에 단행된 군사 쿠데타는 큰 저항을 받지않고 성공했다. 16일 군사혁명위원회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의장겸 계엄사령관에 임명한다. 혁명 실세 박정희는 부의장이 된다. 이와 별도로 혁명5인(박정희 윤태일 송찬호 채명신 김동하)위원회가 구성된다. 5월 18일 숨어있던 장면 총리가 나타나 내각총사퇴를 의결한다. 박정희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던 미국 CIA 한국본부가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국 상황을 보고했다. 쿠데타 당시 저항이 없었고 한국 국민들은 무관심하며 장면과 장도영이 이중적 행동을 보였으며, 박정희가 한때 공산주의자였으나 지금은 단절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미국은 곧바로 새로운 정권을 승인하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한다.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명칭을 바꾼다. 이후 국가 재건 및 사회 정화 작업에 곧바로 나선다. 내각과 전국 시도지사를 현역 군인들이 맡고 기존 정치인들을 가택 연금 시키고 정당활동을 금지한다. 이어 깡패, 용공분자, 부패 공무원, 부정축재자 등을 구속하거나 내쫓는다. 박정희는 5월 23일과 6월 3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하며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6월 30일 박정희와 장도영은 민정 이양 기간을 놓고 견해차를 확인하는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후 곧바로 장도영 측근 40여명이 반혁명 혐의로 구속되고 장도영도 가택 연금된다. 박정희 권력의 또 다른 한 축이 될 중앙정보부가 만들어져 6월 10일 탄생한다.
7월 3일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된다. 명실공히 입법 행정 사법권을 한손에 쥔 것이다. 8월 10일 박정희는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한다. 8월 12일 민양 이양 시간표를 발표한다. 1963년 3월 이전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단원제이며 5월에 총선을 실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박정희는 8.15 축사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한국과 맞지않는다는 내용의 축사를 낭독한다. 이른바 중장년들에게 낯설지 않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11월 1일 박정희는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다. 쿠데타 후 5개월만이다.
◆11월 미국서 동갑 케네디와 회담
8월 박정희와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추진된다. 사무엘 버거 주한미대사는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에게 박정희 의장을 초청하는 게 바람직하는 전문을 보낸다. 9월 러스크 장관은 케네디대통령에게 11월 3일과 17일 사이에 박정희 의장을 초청하자고 건의한다. 초청 의전을 놓고 한미 양측이 잠시 갈등하나 존슨 부통령이 영접하는 걸로 하고 미국 방문이 확정된다. 11월 13일 미국에 도착한 박정희는 다음날인 14일 케네디와 역사적인 정상 회담을 나눈다. 박정희 의장은 군사 혁명의 당위성과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역설했다. 케네디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으며 미국에 부담이 되고 있는 월남파병 문제가 거론된다. 다음날 계획에 없던 2차 정상회담이 열려 월남파병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박정희는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방문한다. 일본은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한일관계가 더없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크게 했다. 실제 박정희는 이전 지도자들과는 달리 일본을 가까이 했으며 4년후 국교정상화를 이끌어냈다. 8월부터 한국과 일본은 두 나라 정상간 회담을 막후에서 준비해 나갔으며 김종필 중앙정보부장도 일본을 비밀리 방문해 수상과 외상을 만나기도 했다. 11월 1일 일본 대표가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의장 공식 초청’ 서한을 전달했다. 11월 11일 박정희는 일본에 도착했으며 12일 박정희 의장과 이케다 수상간의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진다. 겉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원칙론에 합의하면서도 속으로 두 나라 정상은 잊지못할 과거사와 책임을 어떻게 정리할지 계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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