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시리즈7) 5.16, 중장년의 의식을 지배하다
(516시리즈7) 5.16, 중장년의 의식을 지배하다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1.07.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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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위대함을 국민에게 알려라” 곳곳에 5.16 명칭
'5.16민족상' ‘여의도 5.16광장' '제주 5.16도로' 등

 

5.16광장으로 불렸던 서울 여의도광장.  반공 결의대회 등 각종 대규모 집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지금의 여의도공원이다. 사진출처 영등포구청
5.16광장으로 불렸던 서울 여의도광장. 반공 결의대회 등 각종 대규모 집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지금의 여의도공원이다. 사진출처 영등포구청

 

60대의 최인철씨는 1970년대 중반의 고교 시절 교장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교장은 엄격하고 깐깐하기로 소문이 났고 실제로 학생들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서 열리는 조회 시간은 교장의 훈화로 한 시간을 넘기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그에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교장 선생님이 5.16 민족상 교육상을 받아 엄청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교육자로서 자부심이 넘쳤고 다른 교육자보다 자신이 실력과 능력, 인성면에서 남보다 한수 위로 여기는 몸가짐이 역력했다. 그가 받은 5.16 민족교육상은 어떤 상이었나.
 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군사정부의 국민들에게 5.16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조치를 단행한다. 1966년 '5.16민족상운영위원회'를 설립(1966년 3월 24일)해 '5.16민족상'을 제정한다. 설립 목적은 "5.16 혁명의 역사적 사명과 그 이념을 길이 선양함과 아울러 국가 민족의 문화와 산업의 개발에 기여함으로써 조국 근대화의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다"고 되어있다. 학술, 예술, 교육, 사회, 산업, 안전보장 등 여섯 가지 분야의 발전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의 업적을 인정해 2016년까지 매년 5월 16일에 시상한다.
 '5.16민족상운영위원회' 초대 총재는 박정희, 초대 이사장은 김종필이 추대된다. 5.16 민족상 수상자로는 역사학자 이병도를 비롯해 전두환, 구자경, 김기춘, 조갑제, 대한민국해병대전우회 등이 있으며, 2016년까지 51회에 걸쳐 총 317명이 수상했다. 교수나 일선 초중고 교장은 주로 교육 분야 수상자였다.
'5.16'의 구국정신은 은 오랫동안 헌법에도 담겨있었다. 1962년 5차 개정헌법 전문에 규정한 4.19와 5.16 정신을 이어받은 근대화를 상징하기 위해 붙여졌다. 헌법 전문에 있는 5.16정신은 박정희가 군사정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넣은 단어였다.
서울 여의도공원의 광장은 오랫동안 '5.16광장' 으로 불렸다. 1970년 박정희는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여의도에 대광장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처음엔 '민족의 광장'(가칭)이였지만, 박정희는 이미 '5.16광장'으로 이름을 정해 놓고 있었다.
 박정희는 5.16광장을 전쟁이 났을 때 군사용 비행장으로 쓰기 위한 목적 이외에도 체제 선전의 목적도 있었다. 박정희의 의도대로 5.16광장에서 가장 많이 열렸던 행사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대회'였다. 선거 전이나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는 무렵이면 여지없이 '북괴남침 강력규탄 100만 시민대회' 등 관변단체를 동원한 행사가 열렸다. 5.16광장은 1997년부터 광장 공원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여의도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9년 지금의 '여의도공원'으로 개장하면서 도심 속 녹지이자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1970년대 후반 제주도를 여행했다는 60대의 박일호씨는 “그 당시 제주도에는 해안도로와 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 밖에 없었다” 며 “가운데 도로가 왜 5.16도로로 불렸는 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5.16을 널리 알리기 위해 붙인 것같다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고 덧붙였다.
제주 '5.16도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군사용 목적과 산림 자원을 실어나르기 위해 만든 비포장도로였다. 5.16후 김영관 제주도지사는 1962년 군사정부에 건의해 장비와 국토건설단 인력을 지원받아, 제주와 서귀포를 횡단하는 포장도로를 1969년에 준공했다, 처음 만들어질 때는 '횡단도로'라고 불렸다. 그러나 1962년 3월 23일 기공식을 한 횡단도로는 개통이 되기도 전인 1963년에 5.16도로라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기념비에는 박정희의 휘호가 새겨져 있다. 1969년 10월 1일 대선을 불과 5일 앞두고 공사 진척도가 70%만 이뤄진 상태에서 개통식을 가졌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제주 '5.16도로'의 정식 명칭은 '지방도 제1131호선'이다. 지방도가 제주도로 이전되기 전에는 '국도 제11호선'이었다.
올해 환갑을 맞은 한상철 씨는 “역사적 평가는 어찌됐든 우리 세대가 자랄 때 5.16이란 용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용어였다”며 “이제는 5.16이란 단어가 많이 사라진 것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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