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수호조약 140년... 인천 조약지 3곳 놓고 의견 분분
1882년 인천 해안가서 서명… 파라다이스호텔, 화도진공원, 자유공원 밑 웨딩홀 추정
올해는 미국과 조약을 맺은 지 140년이 되는 해이다. 1882년 조선은 서양 나라 중 가장 먼저 미국과 인천에 조미수호조약을 맺었다. 당시 조약이 인천 어느 지역에서 맺어졌는 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바다가 보이는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 화도진 공원, 자유공원 밑 삼국지 벽화가 있는 웨딩홀 세 지역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조미수호조약은 1882년 5월 22일 당시 인천 해안가 언덕에서 맺어졌다. 그러나 해안가 언덕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오랫동안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파라다이스 호텔과 동구에 있는 화도진 공원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자유공원 밑의 웨딩홀이 확실하다는 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 화도진 공원에 조약체결 재현
인천항과 멀지 않은 동구 화도진공원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1.3㎞가량 떨어진 파라다이호텔 주차장에도 조약 체결장소를 알리는 다른 기념비가 있다. 화도진공원에 있는 기념비는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조미수호통상조약 100주년이 된 해인 1982년 12월 14일에 세워졌다. 기념비 동판에는 '여기 이 유서 깊은 화도진 언덕은 1882년 5월 22일 한미 양국의 대표들이 양국 외교관계의 첫 장을 여는 한미수호통상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한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중략)이 표지석을 다듬어 세운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파라다이스호텔에 있는 기념비는 인천향우회와 인천시가 2006년 1월에 세웠다. 기념비에는 '1882년 5월 22일 이곳에서 조선의 전권대신 신헌(申櫶)과 미국의 천권공사 슈펠트(Shufeldt.R.W.) 간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인천시 지정 기념물 2호인 '화도진(花島鎭)'은 조선시대 고종 16년 7월에 완공된 진지로 서해안 방어를 도맡았던 곳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로도 알려졌다. 동인천역에 500여미터 정도 떨어진 화도진공원에 조약 체결 당시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동구는 2015년부터 매년 화도진공원에서 개최하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재현식' 행사를 치른다. 지역행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역사전문가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동구는 조약 재현 등 화도진 축제를 지역의 대표행사로 만들어가고 있다.
기념비가 두 곳에 세워진 게 확인되면서 지역과 학계에서는 진짜 체결장소가 어디인지를 두고 수년간 논란이 빚어졌다.
◆2013년 장소 담긴 지도 발견
조약 체결장소는 그동안 조선시대 세관 역할을 하던 기관인 '인천해관(仁川海關)' 관사라고 전해졌지만, 인천 해관의 정확한 위치를 표기한 지도가 없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2013년 정확한(?) 체결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새로 발견됐다. 인천해관 문서 중 인천해관 세무사공관 위치가 표기된 옛 제물포 지역 지도가 발견된 것이다. 세무사공관 위치는 화도진도, 파라다이스호텔도 아니었다. 그곳은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번지 자유공원 입구 부근이었다. 지금은 웨딩홀이 자리하고 있다.
◆한미 교류 150년 ‘우리는 혈맹’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교류는 150년에 이른다. 조선말인 1866년 미국을 처음 만났다. 무력 충돌이었다.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면호가 조선을 무단 침입해 조선은 이를 물리친다. 1871년에는 전쟁 수준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른바 신미양요다. 강화도에서 맞붙은 전투에서 조선군은 처절한 항쟁 끝에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다. 조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서구 외세의 물결이 밀려오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맺고 미국과 공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서양 국가 중 처음 맺은 조약이었다. 그러나 조미수호조약은 형식적이었고 서로에게 득이 없었다. 이후 미국은 조약과 달리 필리핀을 취하는 대신 일본에게 조선을 양보, 한일 강제 병합에 일조한다.
미국과 대한민국이 혈맹이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세계화 전략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 없었고 한국은 미국에 ‘애원 반 협박 반’ 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