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시리즈)1963년 국내는... 박정희 대통령 당선, 제3공화국 시작
남북 냉전속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과 국교 수립 한창 오늘날 서울시 모습 갖춰지고 국민음식 라면 처음 등장
1963년은 대한민국의 정치 격변기였다. 대통령 선거가 실시돼 군사정권에서 민간정부로 바뀌었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가 5대 대통령에 당선돼 제3공화국이 시작됐다. 군사쿠데타의 또 다른 주역인 김종필은 37세의 나이에 공화당을 이끌게 돼 정권 2인자로 자리매김한다. 11월 제6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져 민주공화당이 110석, 민정당이 40석, 민주당이 14석을 차지하였다. 민주공화당은 오늘날 여당인 ‘국민의힘’ 뿌리인셈이다.
전쟁까지 치른 남북은 대결의 장을 외교 무대로 옮겨 제3세계와 국교를 맺는데 온힘을 쏟았다. 특히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과 국교를 수립한다.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달러가 필요했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 독일로 광부들이 출국했다.
서울시가 서울인근의 경기도 일대를 흡수해 서울시 면적이 크게 늘어났으며 오늘날 서울의 대체적인 규모를 갖추게 된다. 부산시가 경상남도에서 분리돼 부산직할시가 된다. 의정부와 속초 안동 천안이 시가 됐으며 전라북도 논산 금산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충청남도로 편입된다.
오늘날 전국민의 인기메뉴가 된 라면이 이해 처음 탄생했으며 모나미 볼펜 또한 처음 선을 보여 일상 생활에 크나큰 혁명을 가져왔다. 첫 실내체육관인 장충체육관이 완공돼 스포츠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합회(이하 한국노련)'가 결성돼 노동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태원 참사처럼 전국민에게 슬픔를 안겨줬던 대형참사가 이 해에 잇달아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다. 63년 1월 전남 영암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138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에는 경남 거제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70여명이 사망했다. 10월에는 경기도 여주 신륵사로 소풍가던 안양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형 등 150명이 탄 나룻배가 침몰 49명이 익사하는 등 대형 참사가 잇따랐다. 희대의 사건으로 여겨지는 고재봉 살인 사건도 일어났다.
매년 봄이면 전국민의 축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진해군항제가 이해부터 시작됐다. 대중 작가였던 최인호가 1963년 고교 2년때 ‘벽구멍으로’라는 단편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학계를 놀라게 했다. 많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KBS수신료가 이해부터 징수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부부, 그리고 외아들 이구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생활의 혁명을 가져온 모나미 볼펜도 이해 처음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