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상륙작전 때 큰 역할 '팔미도 등대' 아시나요(50년)
1950년 9월 14일 밤 불밝혀 연합군 상륙 길잡이...우리 나라 최초 등대 있어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교두보를 마련한 팔미도등대 탈환 점등 제68주년 기념행사가 14일 팔미도 등대에서 KLO8240부대 회원 및 각계인사, 해군장병 등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KLO8240부대전우회총연합회(회장 김상기)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김상기 회장의 기념사, 인천해역방어사령관 및 인천보훈지청장의 축사,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팔미도등대 탈환 점등 행사는 인천상륙작전의 불을 밝힌 “팔미도등대 탈환 작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서, 인천상륙작전 전승행사의 일환으로 매년 전승기념일 하루 전날인 14일에 열리고 있다.
인천시 중구 무의동에 서 있는 팔미도 등대는 클라크 대위와 팔미도 등대원의 첩보수집 노력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전적지다. 1950년 덕적도와 영흥도를 점령한 유엔군은 팔미도를 확보하여 인천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에 미 해군 클라크(Eugene Clark) 대위는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정보수집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서해지구 책임자인 앤드류스(William G. Andrews) 소장의 주선으로 2명의 한국인 통역과 영국 해군 구축함 췌리티호(H.M.S. Charity)를 타고 와서 9월 1일 한국 해군함정 PC703함에 옮겨 탄 다음, 그날 저녁 영흥도에 도착하였다. 클라크 대위는 국군 정보장교인 계인주 대령과 연정 중령, 그리고 등대원들의 협조를 받으면서 정보수집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청소년들을 동원하여 해안감시반을 조직하고 일부의 청년들을 인천과 서울 등지로 파견 침투시켜 북한군 포대의 위치와 수, 해벽의 높이 그리고 서울-인천 간의 부대집결소와 이동로 등을 조사 보고하는 동시에 자신도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노를 저어 들어가 직접 정보를 입수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팔미도 등대가 북한군에게 파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유엔군 사령부에 보고하였다. 이에 유엔군 사령부는 작전 시간에 맞추어 팔미도 등대에 점등할 것을 명령하였다. 클라크 대위가 한국군 유격부대의 지원 하에 9월 14일 야간 팔미도에 상륙하여 팔미도 등대의 항해등을 밝히면서 국군 및 유엔군 함선들이 비어수로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하였고 북한군이 국군과 유엔군의 상륙전을 예상하고 있는지 혹은 북한군이 방어대책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하여 중점을 두어 각 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성공하였다.
팔미도 등대는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선박 운항의 안전을 위해 1902년 5월 착공하여 1903년 6월 완공한 한국 최초의 등대이다. 2003년 현대식 등대가 새로 건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