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인들은 '한국의 뼈아픈 역사'를 어떻게 봤을까
강화도 방문해 강화도 조약 현장, 초지진, 고인돌 유적지 둘러봐
최근 일본 지인 2명과 함께 강화도를 다녀왔다. 한 분은 83세인 쿠니키오 상으로 오랜동안 일본 은행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나라에서 혼자살고 있다. 일본박사인 처형과 아내와 30여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처형이 1980년대초 일본 유학시절 이 댁에 잠시 머물렀다. 다른 한 분은 센다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인 고바야시씨로 1960년생이다. 도산법 관련 한중일 법조인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부장판사는 한국에 열번 정도 왔다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말이 매우 능숙했다. 두 사람 모두 전형적인 일본인답게 남에게 결코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
이들과 처형, 아내와 함께 강화도 투어에 나섰다. 초지진에 도착하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산을 쓰고 초지진을 돌아보며 일본 메이지유신 7년 후인 1875년 이곳에서 조선군과 일본군이 무력으로 부딪친 운요오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설명했다. 두 나라 모두 근대화에 몸부림치던 당시를 각자의 머릿속에 그렸다. 쿠니키오상이 일본은 미국이 무서워 바로 개항했다고 말했다.
갑곳돈대에 있는 강화전쟁역사박물관에 들렀다. 판사인 고바야시씨는 전시물 내용을 꼼꼼이 읽어봤다. 몽골군의 고려 침입부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과 의병 활동 등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유심히 살폈다. 강화도 성공회 대성당과 철종이 어린 시절 자랐던 용흥궁과 고려궁도 둘러봤다. 강화가 고려시대때 40여년간 수도 역할을 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점심 식사후 강화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고인돌을 구경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강화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라며 일본 나라에도 역사적으로 오래된 유적들이 있다고 했다. 강화 시내로 들어오며 강화도 조약 현장인 연무당 터를 찾았다. 부장판사인 고바야시 상은 강화도 조약 안내문을 보면서 강압적이며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설명에 손가락을 짚어가며 여러 차례 읽었다. 과연 그는 이 구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 지 궁금했다.
3일간 우리 집에 머물면서 쿠니키오 상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삼성이 일본의 도시바나 파나소닉 등을 제치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며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