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지키는 孝… 시대의 딜레마 ‘孝’
법원 “효 불이행에 부모 재산 반환”… 5070세대 “자식에게 짐 돼선 안돼”
법원이 효도각서를 쓰고 부모재산을 증여받은 후 효를 실행하지 않은 아들에게 부모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뤄졌던 孝를 법원이 판결하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법조계와 노인전문가들은 효와 재산에 관해 부모와 자식간의 분쟁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재산을 물려줄 경우 효도 이행 각서를 반드시 서면으로 받아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회는 불효방지법을 추진중이다.
◇자식과도 반드시 서면약속
서울에 사는 70대 중반 김모씨는 2003년 아들에게 2층집과 주식 등 재산을 물려주며 각서를 받았다. 부모와 함께 살며 충실히 봉양하고 이를 이행치 않으면 재산증여는 없던 일로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밥도 같이 먹지 않았고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딸의 집으로 옮긴 아버지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증여 계약이 해지됐으니 재산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법조계와 노인전문가는 효와 관련된 재산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 노인전문 변호사는 “자식과의 구두 약속은 법원에서 효력을 발생하기 힘들다”며 “확실하게 증거가 될 수 있는 서면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간에 재산분쟁이 잦아지자 죽을 때까지 재산을 갖고 있겠다는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 수원의 박치용(87)씨는 “자식이 사업한다면서 가져다 버린 돈이 수억원이다”라며 “더 이상 자식을 믿을 수 없기에 끝까지 내 이름으로 집을 갖고 있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불효자방지법을 상정해 놓고 있다. 부모의 재산을 받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 증여를 취소하고, 부모를 폭행한 자식은 부모 뜻과 상관없이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청년“구습” 장년“의무” 노년“당연”
부모가 다 벌어서 입히고 키웠는 데 부모가 병들었다고 내버리려는 게 자식이냐.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살아야 하는 데 요즘 젊은 것들은 지들 편하자고. 천벌 받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재산을 절대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자식들도 하나도 맘에 안든다. (83세. 서울 은평구 최석철씨)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께 살기엔 너무 힘들다. 부모들이 자식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를 못하신다. 그래도 우리는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봉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남편 퇴직과 자식 뒷바라지, 집안 살림살이 등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다. 우리는 자식에게 기댈 생각조차 못한다. (56세. 인천 남동구 김인자씨)
부모님에게 효도하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사회 나와보니 이제 효 개념도 바뀌어야 할 것같다. 예전 대가족때는 모두 함께 살아 웃어른을 모셨으나 이제는 부모를 돌보려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나라에서 요양원이나 요양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22세. 경기 김포시 이운석씨)
효에 대한 세대별 반응이다. 5070세대조차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전통적인 孝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5070세대마저 이제는 상당수가 자식에게는 결코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시대가 됐다.
효에 대한 가치관은 광복후 지난 70년간 근대화와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로 인해 엄청 변했다. 핵가족화, 개인주의 심화로 전통 가족의 개념이 흐려지면서 전통적인 효도 약화되어 왔다. 노인전문가들은 전통적인 효만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면서 5070세대는 부부중심으로 최대한 마지막까지 생활하고 거동이 힘들 때는 요양원에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인택시 운전사 김인구(63)씨는 “나는 일찍부터 요양원에 갈 결심을 했다”며 “살아있는 날까지 찾아서라도 일을 해 자식에게는 결코 의지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