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시리즈)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제3차 세계대전 위기
(62시리즈)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제3차 세계대전 위기
  • 박웅석 기자
  • 승인 2022.04.10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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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턱앞인 쿠바 핵미사일 배치놓고 미국 소련 강경 대치

 

1962년 쿠바사태를 자세한 소개한 출판사의 책 표지.
1962년 쿠바사태를 자세한 소개한 출판사의 책 표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세계는 또 다시 전쟁의 참혹함에 치를 떨고 있다. 강대국 러시아는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한때 러시아는 핵사용 검토까지 알려져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2차 세계대전후 세계는 끊임없이 핵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으로 부터 60년전인 1962년 핵으로 인해 세계3차대전까지 갈뻔했다.
◆1962년 쿠바사태로 미소 전쟁위기
 1962년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 문앞까지 갔다. 그해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세계는 숨죽이고 중남미 카리브해만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미소(美蘇) 냉전이 최고조에 치닫고 있었다. 발단은 이랬다. 1962년 10월 14일 미국 정찰기가 미국에서 불과 200km도 안떨어진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가 세워지고 있는 현장을 포착했다. 소련이 쿠바에 핵탄두까지 옮겨놓고 미사일 기지를 짓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바로 밑에 붙어 있다. 그야말로 미국 전역이 소련의 미사일 기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생겼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세계를 흔들었다.
 소련은 미국이 먼저 소련 부근에 핵 미사일을 배치했다며 이를 강행했다. 실제로 미국은 소련과 국경을 맞댄 터키에 주피터(사거리 2410km·탄두 위력 1.45메가톤) 핵 미사일을 배치했다. 소련 전역이 미국 미사일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다. 
 미국과 적대관계로 돌아선 쿠바가 미사일 기지 건설을 요청해왔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는 1961년 미군의 피그(Pigs)만 침공 사건을 겪은 터였다. 미국이 재차 공격해올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피그만 사건은 미군의 훈련을 받은 1400명의 쿠바 망명군이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바에 상륙한 사건을 말한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 도발에 해상봉쇄와 외교적 대응으로 맞섰다.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대 국민방송을 통하여 극적으로 소련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
"미국은 쿠바에서부터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서반구에 속하는 어떠한 나라라도 공격을 당할 때는 그것을 소련의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며, 미국은 소련에 대한 최대의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다."
 28일까지 1주일간 미군은 실제 핵전쟁을 준비했다. 세계는 다만 긴장과 공포에 휩싸였다. 10월 24일 핵무기를 적재한 소련선박이 해상격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 선박 가까이까지 접근했다. 그 순간 소련 선박은 진행방향을 돌려 돌아갔다. 그리고 나흘 후인 28일 흐루쇼프는 미사일 제거방침을 선언함으로써 쿠바 사태는 위기를 벗어났다. 세계 모든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3일 만에 봉합됐지만 그 영향은 엄청났다. 핵무기를 개발 중인 나라도, 핵무기가 없는 나라도 핵의 위력을 깨닫게 됐다. 당시 프랑스는 샤를 드골 대통령 주도로 핵무기 개발을 하는 중이었다.  다른 국가들도 너도나도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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