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자 표기는 왜 ‘大邱’로 바뀌었나(우리땅이야기12)
대구의 한자 표기는 왜 ‘大邱’로 바뀌었나(우리땅이야기12)
  • 최재용
  • 승인 2019.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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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덕왕때부터 조선 영조시대 까지는 대구(大丘)로 표기
"공자 이름 ‘구(丘)’와 같아 바꿔야" 정조 받아들여 구(邱)로 변경

우리땅 이름 이야기 시리즈로 이번엔 대구 지명 유래 두번째다

대구
달구화(達句火)’(불 화)’는 우리말 을 나타낸 것인데, ‘의 뜻 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끌어다 쓴 것이다. ‘이란 지금도 벌판이라는 말에 쓰이는 것처럼 넓은 들판을 말한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의 책 조선상고사에서 은 원래 <>’에서 시작해 벌판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고 해석했다. 인류가 농업을 할 때 처음에는 대개 불로 산이나 들을 태워서 개간한 다음에 경작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같은 뜻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합해보면 대구의 원래 우리말 이름은 ᄃᆞᆯ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ᄃᆞᆯ벌을 표현할 우리 글자가 없으니까 한자를 이용해 이를 달구화(達句火)’라 적은 것이다그런데 이 은 땅 이름에 많이 쓰이면서 높다는 뜻 외에 크다, 넓다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이라는 뜻까지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 어떤 땅 이름의 앞쪽에 쓰이면 높다, 크다, 넓다라는 뜻을 갖는다. 반면 땅 이름의 뒤쪽에 오면 통치자가 다스리는 고을, (), ()과 같은 뜻을 갖는다. 대구의 원 이름인 달벌이 바로 앞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도읍으로 정했다고 한 아사달(阿斯達)’()’은 뒤의 경우에 해당한다따라서 달벌높고 넓은 벌판(마을)’ 정도의 뜻이 된다.
팔공산(八公山) 등의 높은 산이 있고, 그 아래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벌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경덕왕이 붙인 이름 大丘를 해석하면 큰 마을이라는 뜻이니, 바로 이 달벌을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그런데 이 大丘라는 이름은 조선 정조 임금 시대에 지금과 같은 한자 이름 大邱로 바뀐다.
이름이 바뀌게 된 계기는 정조 임금의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 시대에 한 유생(儒生)이 올린 상소문(上疏文)에서 비롯됐다. 대구에 살던 이양채(李亮采)라는 이 유생은 영조 26(1750) 조정에 상소를 올려 대구(大丘)()’자가 공자님의 이름인 ()’와 같으니, 사람들이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고을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요구했다이 내용대로 공자는 성이 공()이고, 이름은 이다.  '는 언덕, , 마을 등의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따르면 공자가 태어났을 때 머리 중간이 움푹 패어 있었기 때문에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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