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이름 ‘구(丘)’와 같아 바꿔야" 정조 받아들여 구(邱)로 변경
우리땅 이름 이야기 시리즈로 이번엔 대구 지명 유래 두번째다
◆대구㉯
달구화(達句火)’의 ‘火(불 화)’는 우리말 ‘벌’을 나타낸 것인데, ‘火’의 뜻 ‘불’이 ‘벌’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끌어다 쓴 것이다. ‘벌’이란 지금도 ‘벌판’이라는 말에 쓰이는 것처럼 넓은 들판을 말한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의 책 「조선상고사」에서 ‘벌’은 원래 ‘불<火>’에서 시작해 ‘벌판’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고 해석했다. 인류가 농업을 할 때 처음에는 대개 불로 산이나 들을 태워서 개간한 다음에 경작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불’과 ‘벌’이 같은 뜻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합해보면 대구의 원래 우리말 이름은 ‘ᄃᆞᆯ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ᄃᆞᆯ벌’을 표현할 우리 글자가 없으니까 한자를 이용해 이를 ‘달구화(達句火)’라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 ‘달’은 땅 이름에 많이 쓰이면서 ‘높다’는 뜻 외에 ‘크다, 넓다’ 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성(城)’이라는 뜻까지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달’이 어떤 땅 이름의 앞쪽에 쓰이면 ‘높다, 크다, 넓다’라는 뜻을 갖는다. 반면 땅 이름의 뒤쪽에 오면 통치자가 다스리는 고을, 성(城), 읍(邑)과 같은 뜻을 갖는다. 대구의 원 이름인 ‘달벌’의 ‘달’이 바로 앞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삼국유사」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도읍으로 정했다고 한 ‘아사달(阿斯達)’의 ‘달(達)’은 뒤의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달벌’은 ‘높고 넓은 벌판(마을)’ 정도의 뜻이 된다.
팔공산(八公山) 등의 높은 산이 있고, 그 아래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벌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경덕왕이 붙인 이름 ‘大丘’를 해석하면 ‘큰 마을’이라는 뜻이니, 바로 이 ‘달벌’을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大丘’라는 이름은 조선 정조 임금 시대에 지금과 같은 한자 이름 ‘大邱’로 바뀐다.
이름이 바뀌게 된 계기는 정조 임금의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 시대에 한 유생(儒生)이 올린 상소문(上疏文)에서 비롯됐다. 대구에 살던 이양채(李亮采)라는 이 유생은 영조 26년(1750년) 조정에 상소를 올려 “대구(大丘)의 ‘구(丘)’자가 공자님의 이름인 ‘구(丘)’와 같으니, 사람들이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고을 이름을 바꿔야한다”고 요구했다. 이 내용대로 공자는 성이 공(孔)이고, 이름은 ‘丘’이다. '丘’는 언덕, 산, 마을 등의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따르면 “공자가 태어났을 때 머리 중간이 움푹 패어 있었기 때문에 ‘丘’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