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시리즈4) "보릿고개 넘자" "배곯지 말자" 경제개발 5개년 시동
(62시리즈4) "보릿고개 넘자" "배곯지 말자" 경제개발 5개년 시동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2.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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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자급 최우선
1962년 경제개발 5개년을 알리는 우표.

 

 1962년 시작된 종합경제개발계획인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절대적인 주안점을 두었다. 당시만 해도 매년 찾아오는 보릿고개로 국민들은 봄이면 먹을 거리를 찾느라 허덕여야 했다.

 농업부문의 주요 목표로 농업증산이 주요 목표였다. 구체적으로는 식량자급을 위한 양곡 증산과 공업용․수출용 농산물의 증산을 목표로 하였다.
 농업구조 개선정책으로 1962년 6월에 농업구조정책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시범 협업농장을 개설하였으며, 1965년 2월에 자립·안정 농가 조성사업을 실시한데 이어 1967년 1월에는 농업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1962년 벼농사의 흉작으로 식량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곡물가격은 크게 올랐다. 1962년도 90.3%였던 식량자급률은 1963년에는 70.9%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은 쿠데타 성공 후 곧바로 마련되기 시작한다. 1961년 5월 20일경부터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자는 혁명공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경제개발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1차 계획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인 유원식 주도로 일부 전문가가 참여하여 작성되었다. 이들 전문가는 정부의 개발의지를 바탕으로 정부 각 부처에 의견을 조회하고 필요한 자료를 지원받으며 제1차 계획의 작성지침에 해당하는 ‘종합경제재건계획안(이하 최고회의안)’을 완성하고 1961년 7월 22일에 발표하였다.
 이 최고회의안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전문가는 김성범(산업은행), 백용찬(산업개발위원회), 정소영(재무부 사세국), 박희범(서울대), 권혁로(육군 중령), 이경식(한국은행), 정일휘 등과 같이 일부 인사로 제한되었다.
제1차 계획 초안은 최고회의안에서 제시한 총량목표 및 부문별 목표를 바탕으로 정부 각 부처에서 제출한 부문계획과 투자계획을 경제기획원이 종합하여 1961년 9월 15일에 완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제1차 계획 초안은 중앙경제위원회(9.29~10.14)의 심의를 거친 다음, 각의의 의결(10.20~11.7)을 거쳐 행정부안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행정부안은 1961년 11월 14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승인을 받고자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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