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시리즈)1962년 첫 産兒제한...“지금은 상상도 못할일”
(62시리즈)1962년 첫 産兒제한...“지금은 상상도 못할일”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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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출산률이 세계 최하위를 기록중이며 계속 떨어져 인구 절벽이 심각성이 하루가 다르게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전국의 산부인과들이 문을 닫은지 이미 오래됐으며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난리다. 초등학교는 교실이 남아돌고 있다. 지방에 있는 대학들은 신입생 숫자를 채우기 못해 신입생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나 역부족으로 몇 년후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자수는 25만여명이었다. 베이비붐세대가 한해에 100만명씩 탄생한 것이 비교해보면 4분의 1로 출생자로 줄어든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출생아가 넘쳐나 아기 낳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도 있었다. 불과 60년전 일이다.
1962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산아제한 정책이 담긴 가족계획을 발표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설립하고 산아제한 슬로건도 발표했다.
 자식을 많이 낳은 다산(多産)은 농업 사회에선 미덕이었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났다. 전쟁으로 연기됐던 결혼과 출산이 줄을 이으면서 인구증가율이 치솟았다. 1950년대 출산율은 6.3명에 달했다. 이른바 베이비세대라고 불리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는 매년 100만여명이 탄생했다.
나라는 식량마련이 시급했다. 급격한 인구증가는 가난에 허덕여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정부의 고민거리였다. 정부는 출산 억제를 위해 전국의 보건소에서 피임약을 무료로 배포했다. 정관 절제술도 마찬가지였다,
1965년 모자보건법(임신중절 합법화)을 국회에 상정해 가족계획사업 참여자에게 근로보상금(1인당800원)과 시술휴가(2일)를 제공했다.
집안의 대를 이으려고 했던 노인들은 반발했다. 경북경산군(현재 경산시)에서 가족계획 요원이 어느 집 며느리를 상대로 피임을 권하다 그 집 시아버지로부터 곰방대로 맞고 쫓겨나기도했다는 기사도 있다.
 1970년대 들어 산아제한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출산율은 4.53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권장하는 자녀 수도 2명으로 1950년대(5명), 60년대(4명)에 비해 줄었다. 당시 슬로건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 였다. 실로 격세지감이 아니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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