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글 강좌’를 탄생시킨 일본인 목사
일본에 ‘한글 강좌’를 탄생시킨 일본인 목사
  • 김현주 기자
  • 승인 2022.02.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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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서 40년넘게 목회활동 요시다코조 목사
일본인들에 제암리 서대문형무소 등 안내하며 참회

 

한국에서 40년 넘게 일본 사죄와 화해의 목회활동을 하고있는 요시다코조 목사.
한국에서 40년동안 일본 사죄와 화해의 목회활동을 하고있는 요시다코조 목사.

 

일본인 요시다코조(吉田耕三) 목사는 40년동안 서울에서 일본인교회를 운영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예전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교회를 찾기도 했다.
 그는 1981년 한국 오기전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목회 활동 중이었다. 한국에서 한국인 목사가 시작한 일본인교회에 일본인 목사가 필요하니 갈수 있냐는 선배 목사의 요청을 수락해 가족 4명과 함께 한국 선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본의 사죄와 한일간 화해의 활동을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한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하나님이 저에게 너희 일본이 이웃 한국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질책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화성 제암리를 비롯해 3.1운동의 시발지인 종로의 탑골공원(옛 파고다공원), 휴전선과 판문점, 서대문형무소, 독립기념관, 안중근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이후 참회의 기도를 행동으로 옮겼다. 일본 동료 목사들과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직접 운전하며 당시 만행 현장을 안내하고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올린다.
 그는 1984년 일본 NHK방송에서 한글 강좌가 개설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을 일본에 어떻게 알릴까 한동안 고심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 영어는 물론 불어 러시아 강좌까지 다 있는데 왜 가까운 한국의 말과 글인 한글 강좌가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방송국에 한국어강좌 개설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는 한국어로 할지 조선어로 할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어로 하면 조총련이, 조선어로 하면 민단측에서 항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송사 담당자와 통화중에 기도하다가 한글강좌라는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한일 관계 갈등에 대해 인간과 교회적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 국가간에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신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목회 활동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1974년 서울에서 열린 기독교부흥대성회(엑스플로 74)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처음 왔다. 당시 일본에서 1000여명의 목회자가 방한했다. 한일교회간 최대 규모의 교류였다. 그는 이때부터 일본에서 배우지 못한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 만행의 역사를 접하게 됐다. 화성의 제암리 교회를 방문해서는 일본의 사죄와 화해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역사와 한일 관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4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김포공항에서 영락교회까지 차를 타고 가는데 일본과 너무 비슷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정말 가까운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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