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윤동주
  • 김욕년
  • 승인 2022.02.09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월의 부활

*시인을 천명으로.
윤동주 하면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 떠오르고 맑고 투명한 영혼을 지닌 청년이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한다.
그러나
1941년  쓴 *십자가 란 시를 읽노라면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조국애와 기백을 지닌 장부가 보인다.
그런데 그의 행보에 의문이 든다.
1941년 연전을 졸업하고 더 넓은 배움을 위해 굳이 일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교토(오사카)의 도시샤 대학에 다니던 중 1943년 일본 경찰에게 체포될 때 자신의 운명을 몰랐을까?
일본 중심에서 한국어로 시와 글을 쓰고 고국에 한글로 서신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동주가 몰랐을까?

1944년 *독립운동 죄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후 이듬해 2월 옥중 차디찬 바닥에 쓰러지며 지른 외마디!
일본 순경은 한국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데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대한 독립을 외치는 *만세 였을까?
눈을 감아도 선명히 떠오르는 고국의 향수를 품은 *어머니 였을까?  아니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확신의 *비명 이었을까?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내 앞에 대장부 윤동주가 서 있다.
온화하고 환한 미소를 띄고.
그는 이미 자신의 시를 통해 조국의 광명을 보았으리라.
광복 6개월을 앞두고 29세에 눈을 감을 때.
더이상 죽음이 가둘수 없는 어둠을 벗어버리고 자유의 날개를 달고 부활했으리라. 
지금도 타오르는 횃불로 우리를 비추는 윤동주.
그가 선명히 보인다.
그의 친구들이 "시인을 천명으로 여긴 동주 라 말하는 이유를 난 이제야 찾은 것 같다.

윤동주 학적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