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시리즈)1964년 프랑스, 중공을 정식국가로 인정...세계가 놀라다
(64시리즈)1964년 프랑스, 중공을 정식국가로 인정...세계가 놀라다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4.03.04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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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에 미국 영국 주도의 서방동맹에 프랑스 일침 가해

 

1964년 당시 프랑스의 중공 승인을 분석한 조선일보 기사.

 1964년 동서 진영은 냉전이었다. 민주과 공산 진영이 심각히 대립하던 때 돌연 프랑스 드골대통령이 당시 서방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중공을 정식국가로 인정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으로 갈라진다.  제2차 세계대전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철저히 미국과 영국이 주도했다. 특히 미국의 입김이 거셌다. 1950∼1960년대 미국은 나토의 주요 과제를 논의할 때 프랑스는 외면하고 영국하고만 협의해 결정을 내리곤 했다.
 자존심이 상한 드골은 갑자기 1964년 마오쩌둥의 중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등 서방 진영은 마오쩌둥의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며 멀리하고 대신 장제스의 자유중국(대만)만을 중국 국가로 인정했다. 프랑스가 중공과 수교한 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반공전선에 균열을 일으킨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중공 승인을 비꼰 국내 일간지의 만평.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미국·영국과 멀어지면 러시아·중국과 가까워지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이끌었고 대전 후엔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1959∼1969년 재임)을 지낸 샤를 드골의 외교전략이 대표적이다. 1944년 당시 프랑스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4년간 나치 독일에 점령당해 지배를 받던 프랑스는 1944년 6월 미·영이 주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간신히 해방됐다. 미·영은 프랑스 임시정부를 무시하며 앞으로 남은 전쟁도 미·영이 주도할 테니 프랑스는 부차적 역할만 맡으면 된다고 했다.

 격분한 드골은 1944년 12월 소련(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전격 방문해 스탈린과 만났다. 당시 3대 연합국의 일원인 소련은 전후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영과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었다. 미·영을 향한 반감으로 의기투합한 드골과 스탈린은 프랑스·소련 동맹조약을 전격 체결했다. 전후 공산주의 소련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여기던 미·영 입장에서 프랑스의 이같은 돌출행동은 서방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시도였다.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눈에 프랑스 드골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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