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시리즈) 1964년은 한국 도약 원년.... “달러 벌자” “배고픔 벗자”
(64시리즈) 1964년은 한국 도약 원년.... “달러 벌자” “배고픔 벗자”
  • 최용희 기자
  • 승인 2024.02.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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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상지원 줄어 외국에 차관 요청... 독일에 광부, 베트남에 군대파견
경제발전 돈 마련 위해 한일 국교 회담 가속화... 식량증산 운동 펼쳐

 

1964년 완공된 한일시멘트 단양공장. 이해 산업화의 본격 시동이 걸렸다.

 1964년 대한민국은 군사정부에서 민간정부로 탈바꿈했다. 이 해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산업화와 근대화였다. 박정희 정부는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자’ ‘수출에 총력쏟아 달러 벌자’ ‘한일국교 정상화’ 등에 매진했다. 경제개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돈이 필요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년 연설(연두 교서)에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먹고살 수 있는 토대를 닦자”며 국민 동참을 호소했다.

◆“달러 벌자” 수출 군대파견 한일국교 정상화 총력
 경제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천하려는 박정희 정부는 돈이 필요했다. 다름아닌 달러였다. 미국은 1964년 들어 대한민국 원조를 크게 줄인다. 1963년 원조액이 2억1640만 달러였으나 1964년 1억4930만 달러로 감소했다. 미국은 기존의 무조건적인 지원에서 차관이나 유상 지원으로 정책을 틀었다. 박정희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달러를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어려워진다. 한일국교 정상화로 인한 청구자금, 월남 파병에 따른 달러 확보, 외국 원조 차관 등이 이에 대한 돌파구였다. 
 1964년 수출산업단지 조성법이 공포된다. 처음으로 수출 1억불을 달성한다. 이로인해 수출의 날(현 무역의날)이 제정된다. 저축의 날도 만들어진다. 박대통령은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독일(당시 서독)을 방문하고 독일 재정 원조 차관을 맺는다. 서독에 중기자금으로 878만불의 차관을 요청한다. 한미경제협력 회의가 열려 한국과 미국은 기술 개발 협정에 조인한다. 구주경제사절단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을 방문한다. 한편 달러 벌기 일환으로 베트남과 군대 파견 협정을 맺는다.
이 해에 울산정유공장과 단양시멘트공장이 준공되고 울산비료공장이 기공식을 갖는다. 신진자동차가 국산품 전시회를 연다.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공장짓기에 바쁜 한해였다.

◆“배고픔 벗어나자” 600만석 증산 목표
가수 진성이 부른 노래 ‘보릿고개’는 1960년대 배고픔에 허덕이던 시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매년 식량이 부족해 매년 찾아오는 보릿고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식량 증산이 절대적이었다. 정부는 600만석 증산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착수한다.
 농림부는 경지의 확보와 토지의 경제적인 이용과 식량의 자급화를 위한 대책을 세운다. 식량자급화를 위해 5년 간에 걸쳐 50만 정보의 개간과 5만 정보의 간척을 목표로 삼았다. 계획이 완료되면 연간 600만석의 식량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합리적인 국토개발계획으로 추진하도록 하였다. 국토 개발은 범국민운동으로서 민간기관이 중심이 되고 정부는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하였다. 개발 사업은 10대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되 개발대상지는 기업체, 국민운동본부, 정당, 사회사업기구, 농민 등의 책임하에 개발, 경작, 관리하게 하였다.
영화 ‘식량 증산 운동의 보람’이 제작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 양곡 소비 절약 운동도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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