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여행보다 좋은 것 오래 함께.. 숙소 정하고 나머진 발길 닿는대로

2020년 남편이 32년간의 회사 생활을 끝냈다. 부부는 시원섭섭했다. 영종도가 집인 부부는 국내외 가리지않고 한달살이를 계획했다. 두 사람은 자주 '타지 한달살이'를 한다. 남편 퇴직후 지금까지 10개 나라 16곳에서 한달살이를 했다. 제주는 한달살이 단골코스다. 함덕과 서귀포에 머물렀고 3월에 또 다시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한다.
남편 조대성씨는 1962년생으로 2020년 퇴직했다. 아내 김지영씨는 1968년생으로 전업주부지만 글실력이 만만치 않아 여기저기에 원고료를 받고 수시로 글을 쓰고 여행 블로그도 운영한다. 한달살이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고 건강한 부부상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을 만나 한달살이의 즐거움과 중년의 인생 계획 등을 들어본다. 2회로 소개한다.
•한달살이를 하게 된 동기는
직장 생활에 쫒겨 휴가 때 여행을 하면서 늘 짧은 기간이 아쉬웠다. 언제 또 올까 싶은 마음에 보고 싶은 것, 먹어보고 싶은 것은 많아 여유를 즐기려는 여행이 오히려 고된 시간들이 되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바쁘게 이동이 많은 여행을 하기 보다는 머물며 찬찬히 보고 싶은 것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 국내외 어느 나라와 지역에 살았나
퇴직 후 가장 오랜 기간 머문 국내는 제주도이다. 제주도 중에서도 함덕(한달)과 더 오랜 시간 서귀포(6달)에 묵었다. 해외는 튀르키에 안탈리아 (한달)·이스탄불 (한달), 체코 프라하 (45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10일), 그리스 아테네(15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10일), 태국 치앙마이 (40일)·푸껫 (30일)·끄라비 (15일)·방콕 (15일), 일본 교토·오사카 (3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33일), 인도네시아 발리 (30일) 등이다.

•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이가 주는 즐거움은
새로운 곳을 눈에 익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처음 걸었던 골목길을 익숙한듯 지나가고, 입맛에 맞는 카페를 골라서 가게 되고, 얼굴을 알아보며 웃으며 인사하는 가게가 생기고, 쇼핑몰에서 화장실 위치를 외우게 되는 과정들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는 연습을 시켜주는 것 같다.
• 한달살이가 끝나고 드는 감정은
남편이 언젠가 내게 여행의 막바지로 가면 짜증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막상 들을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돌아보니 편하고 익숙한 집에 돌아간다는 안도감보다 이곳을 또 언제 와서 이 풍경들을 보게 될까 하는 아쉬움이 더 컸던것 같다. 며칠을 머무나 한달을 머무나 다치지 않고 잘 지냈다는 생각과 더 머물러도 좋겠다는 아쉬움이 늘 함께 한다.
• 그 지역과 나라를 선택 이유가 따로 있나
오래전 패키지 여행에서 스치듯 지나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곳 그리고 자주 가고 싶다 말했던 곳 또 다시 가도 좋았고 좋을 곳들이다.
• 색다른 경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씁쓸한 순간은 아테네 지하철 역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느닷없이 역정을 내며 소리를 질렀을 때다. 코로나로 인해 닫혀있던 국가간 이동이 풀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동양인이니까 중국인으로 여겨 마음속의 담아두었던 화를 그냥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대처라고 할것도 없이 그냥 소리없이 그 자리를 피하는 것 뿐이었다. 가장 가슴 떨렸던 순간은 역시 아테네의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할뻔 했던 일이다. 백팩을 뒤로 매고 날이 좀 더운데 시원한 곳으로 들어갈까에 빠져 걷고 있을 때였다. 왠지 배낭에 손이 닿는 기분이 들어 얼른 뒤를 돌아 무작정 바로 뒤에 서있던 청년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러자 청년은 과한 몸짓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다는 행동을 했고, 나도 가방을 열어 핸드폰과 지갑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이 한둘 모여 자초지종을 떠들기에 피해가 없으니 얼른 뒤돌아 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때 한 발 물러서 있던 청년이 자신이 계속 보고 있었는데 별일 아니라는 몸짓을 했다. 많이 놀란듯 행동하지 않고 별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걸음을 옮겼지만, 처음부터 보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소매치기 초보 실습용으로 선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싶어 뒤늦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설레였던 순간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A.D.160년 지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를 보았던 것과 1787년 모짜르트가 직접 피아노도 치고 지휘도 하며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초연했던 프라하의 <스타보브스케 극장>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했던 때이다. 오페라를 특별히 좋아해서는 아니고, 로마시대의 원형극장과 모짜르트가 초연을 했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더 끌림이 있었다. 8시가 넘어서도 어두워지지 않은 언덕으로 한껏 샬랄라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라니 참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프라하의 극장 역시나 젊은 사람들 마저 허투루 옷을 입고 온 이들이 없었고, 막간에는 휴게소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장면들과 흡사했다.
따스한 순간도 있다. 안탈리아에서 버스 카드를 사서 충전하고 버스를 이용한 첫날이다. 버스 요금을 정확히 몰라서 남은 잔액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3번째 버스를 탔다. 타면서 카드를 읽히니 자꾸 경보음이 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잔액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전했다. 요금을 내지 못하면 내려야 하는 평소 우리의 생각에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기사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일단 타고 2정거장쯤 가면 충전기가 있는 정거장이 있으니 거기서 충전 하라는 의미를 전달왔다. 얼떨결에 내려서 어리버리 충전을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버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설마 우리를 기다린건가 의아해하며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그때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사람들이 꽤 들어찬 버스 였음에도 기사도 승객도 투덜거리거나 생색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방인에 대한 이해의 눈빛이 느껴져서 따스한 정감이 전해졌다.

• 숙박 음식 교통이 힘들었을텐데:
장기 여행을 하며 숙소는 그야말로 짧게나마 집이 되는 것이기에 그 선택이 가볍지 않다. 주로 호텔 보다는 공간의 여유가 있는 에어비엔비를 이용하는데, 아무리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봐도 직접 마주하기 전에는 알수없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지도를 함께 보며 거리 분위기나 지하철역 또는 트램 등 대중교통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이전 이용객의 후기를 살피며 불확실성에 대한 실패율을 낮추려고 한다. 그에 비해 주로 도시를 여행한 이유도 있어서인지 교통은 어렵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어플리케이션의 조화로 항공, 철도, 고속버스, 택시 등의 예약과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용이 어려운 구글지도는 처음 가는 도시의 골목길을 도보로 이용하기에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음식 역시 점점더 어려움이 없어지는 부분이다. 평소에도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기도 하지만, 이젠 어디를 가든 음식이 세계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이 빠지지 않는 맛집 메뉴이고, 향신료 사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또 재래시장 보다 마트 이용이 더 빈번해지며 익숙한 상품을 선택하기가 쉬워졌다.
• 언어 소통에 어려움은 :
성격이 어디 가서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남편과 늘 함께 하면서 누구라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필요한 대화 이외에 거의 사용할 일이 없다보니 다행히 지금까지는 심각하게 어려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디건 젊은층은 영어 구사를 부드럽게 했고, 눈치로도 어려움이 느껴지면 핸드폰의 번역기가 충분히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결국 문제는 영어라도 수월하게 하지 못하는 나, 후딱 후딱 핸드폰 조작을 못하는 내 손가락이 문제였다.
• 떠나기전 준비는
조금 더 저렴한 비행기 티켓 알아보고, 숙소 검색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다. 대한민국 여권 파워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아직까지는 특별히 입국을 위해 사전에 비자를 준비할 일이 없었다. 그외에 여러 국가 통화를 하나의 카드로 이용 가능한 카드를 준비하고, 교통편 이용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아둔다.
• 여행 중 배우자와 다투기도 할텐데
집 떠나 좋자고 나가서 가급적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먼저다. 그럼에도 화가 날 일이 있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의 멋진 것들에 마음을 내준다. 그리고 안들리게 뒤돌아서 혼자 투덜투덜 한다. 그러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면 화해한다는 절차 없이 지내게 된다.
• 계획과 어긋난 경우는
30대의 여행은 정말 계획표를 작성해서 다녔다. 며칠 휴가로 떠나는 여행이니, 출발부터 도착까지 시간표에 따라목적지를 정해서 움직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굳이 여행이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은퇴 후 시작한 한달살이는 더더욱 계획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요새는 떠날 도시가 정해지면 그 곳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아닌이상 딱히 계획표 작성은 없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이유도 있겠고, 현지 유심을 이용하며 어디서든 검색이 가능하게 되면서 남편이 갈 곳과 먹을 곳을 찾는 일에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