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격랑을 헤치는 주름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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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희
  • 승인 2025.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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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반에 반의반'

 

 표제작 「반에 반의 반」은 어느 여름날 계곡에서 물놀이하던 ‘나’의 할머니를 추억하며 시작된 이야기다. 십이 년 전 세상을 떠난 기길현 할머니의 제삿날, 둘러앉은 친척들은 물에 젖어 속이 훤히 비치는 속치마 하나만 입고 춤을 추던 그녀를 각자의 기억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기길현의 장남인 ‘나’의 큰아버지만큼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대신 그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장면이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잡겠다고 집에 들이닥쳤는데, 문 앞을 딱 막아선 사람이 바로 네 할머니였어. 양팔을 쫙 벌리고 버티고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쏘아보는 거야. 울고불고 애원하고 빌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고 서 있는 거야. 그러곤 나지막이 사람들 이름을 불러. 아이 누구 아짐, 아이 누구 자식, 누구 동생, 누구 아버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서, 무언가를 골라내고 있는 사람처럼. 아이, 아이,아이.
(…)
어머니는 그때 골라내고 있었던 거야. 그 양반이 떡을 해 먹였던 사람들을. 자식들 굶겨가며 만들어 돌렸던 그 떡. 그 떡이 아버지를 살렸다. 사람들 말마따나 그동안 쌓아둔 인심이. _ 「반에 반의 반」, 82~84쪽.

그가 들려주는 것은 6·25 전쟁의 한가운데, 작은 몸으로 거대한 힘에 맞서는 기길현의 모습이다. 없는 형편에도 동네 대소사를 챙기며 떡을 나누던 그녀는 그렇게 얻은 인심으로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큰아버지에게 기길현은 집안을 건사하고 재생산을 가능케 한 강인한 어머니이지 “함부로 옷 벗어던지고 흐트러지고 그럴 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인 ‘나’는 상상 속 여름날의 계곡에 할머니와 큰아버지를 함께 소환해낸다. 기길현의 아들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물장구를 치는 그를 그려본다. 반의반의 반만큼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 순간은 더없이 환하고 애틋하다. 관습과 관성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들이 순수히 어우러지는 기꺼운 장면. 천운영은 가부장의 전형성을 깨뜨리는 시도를 통해 더 환한 풍경으로 우리를 이끄는 듯하다.

「우니」 「명자씨를 닮아서」 「내 다정한 젖꼭지」 「봄밤」으로 이어지는 연작소설은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들에게 무람없이 먹을 것과 잘 곳을 내어주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그녀에게 길러진 존재들의 뒷이야기다. 재취 자리로 들어갔다가 남편의 죽음 이후 본처 자식들의 반발로 집에서 쫓겨난 순임. 그런 순임을 다시 거둬들인 것이 순임의 며느리 기길현이다. 수십 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핏줄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꽃놀이를 떠난 두 할머니는 갈 곳 없는 어린 오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갑자기 눌러붙은 군식구가 달갑지 않을 법한데도 길현은 오누이에게 이부자리를 내어준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는 중년의 여성 소설가 ‘나’가 주인공이다.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제안했을 때, ‘나’는 친구의 딸을 떠올린다. 친구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아온 그녀는 이 년 전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비록 각자의 신념 때문에 평행선을 달리는 듯 보이지만, 이들이 인터뷰의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서로다. 가족이기에 겪고 마는 갈등의 뒷면에는 서로를 향한 맹렬한 사랑이 있음을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되어주오」에서 ‘나’의 부모님은 지금 막 위장이혼을 마쳤다. 절세를 위한 방편이었다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정말로 자신을 떠날까 부산을 떨고, 큰딸인 ‘나’는 이참에 정말로 갈라서라며 아버지의 과오와 어머니의 희생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식사 자리는 평소처럼 끝나고, 아버지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귀가한다. 허탈해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나지막이 묻는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43쪽)
‘나’는 그렇게나 딸을 귀애했다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전해듣는다. 벌이는 변변찮아도 어머니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는 외할아버지는 그녀가 덜컥 혼전임신으로 아기를 낳고 남편 될 사람과 함께 찾아왔을 때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네가, 저 사람 아버지가 되어줘라.”(61쪽)
아버지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셨을까? 당부였을까 충고였을까 걱정이었을까. 사랑을 주라는 말이었을까, 사랑을 받으라는 말이었을까. 그래서 일단 사랑을 주기로 했어. 내 아버지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더라. 내가 주는 것이 사랑인 줄도 몰랐지. 그래서 사랑을 받는 법부터 알려줘야 했어. 끊임없이 사랑을 주면서. 그래야 또 내가 사랑을 받을 테니까.
_「아버지가 되어주오」, 63쪽.

『반에 반의 반』의 수록작들은 ‘명자’와 ‘기길현’이라는 두 여성의 이름으로 꿰어져 있다. 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각각의 단편에서 그들은 조금씩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전형으로 모일 수 없는 여성들의 이채로운 목소리를 천운영은 들려준다. 그러나 이중에서 아직 이름을 가지지 않은 이도 있다. 명자와 기길현에게서 태어난 새 세대의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명자와 기길현이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은 새로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새 시대의 배턴을 넘겨받은 그녀들이 다성(多聲)과 다감(多感)의 계보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소설가 천운영이 써내려가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걱정은 사라지고 응원의 목소리가 샘솟는다. 이미 잘해내고 있으니, 앞으로 건투를 빈다고. 천운영의 작품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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