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잃어선 안돼” 결연한 인천기계공고 ‘4.19 기념식’
“민주주의 잃어선 안돼” 결연한 인천기계공고 ‘4.19 기념식’
  • 이두 기자
  • 승인 2025.04.18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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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교정에서 65주년 기념식... 500여명 숭고한 정신 기려
1960년 인천에서 인천공고 학생 300여명 가장 먼저 가두 시위

 

18일 인천기계공고 교정에서 열린 4.19 기념식.

 4.19 기념식은 엄숙하고 진지했으며 결연했다. 참석자들은 65년전인 1960년 4월 19일로 돌아가 당시 10대 학생들이 교정을 박차고 나가던 그 날의 숨가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독재 타도”“이승만 물러가라”“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던 학생들의 불꽃같았던 함성이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듯 했다. 최근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불안한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남다른 의미가 참석자 모두에게 전해졌다.

교내 기념탑에 헌화하는 재학생들.

 4.19혁명 65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11시 인천기계공고 교정에서 열렸다. 백발이 성성해진 당시 시위자 50여명과 재학생들, 인천시교육감과 부시장, 시의장, 보훈지청장 등 500여명이 참석해 그 날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기념식은 신원철 인천기계공고 4.19혁명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이 “우리는 뭉쳤다, 우리는 싸웠다, 우리는 이겼다”를 힘차게 외치며 시작됐다. 경찰과 대치했던 당시 치열했던 상황과 기념사업회 설립 등의 경과 보고와 유공자 14명 표창, 최승일 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 환영사, 축사 순으로 이어졌다. 참석자 모두가 4.19의 노래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를 한 마음으로 부를 때는 비장미까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교정에 1961년 세워진 기념탐 앞에서 참석자들은 추모와 헌화했다. 특별히 재학생 10여명이 직접 헌화해 민주주의를 지켜낸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 앞에 고개숙였다. 기념탑에는 당시 학생들이 서로 어깨를 두르고 가두 시위하는 생생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 날 상을 받은 수상자 14명은 다음과 같다. △인천시장상(이건직 김하영 김승웅)△인천시교육감상(이찬용 이상수 어대식)△인천시의회의장상(손명구 김광수 성락기 김용휘 구본상)△인천보훈지청장상(유중호 이해인 홍성표)

4.19 기념식 행사에 참석한 인천기계공고 재학생들.

■65년전 인천공고 학생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돼 시위를 일으켰다. 인천에서는 인천기계공고 학생들이 가장 먼저 시위에 앞장섰다. 학생 300여명이 수업을 거부하고 ‘이승만 퇴진’을 외치며 교문을 박차고 가두시위에 나섰다. 수봉공원 거리를 지나 제물포역 인근까지 진출했다. 경찰과 맞닥뜨려 투석전을 벌였다. 4월 26일까지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으며 마침내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냈다.

4.19 당시 참가자들과 선후배들. 모두 백발이 성성하다. 맨 앞가운데가 최승일 기념사업회장. 왼쪽 두번째가 신원철 명예회장.

 1년 후인 1961년 4.19혁명 기념식이 도원동 숭의운동장에서 열렸다. 그해 6월 12일 4.19 시위의 발화지였던 인천기계공고 교정에 ‘4.19학생의거기념탑’이 세워졌다. 인천기계공고의 4·19학생의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천의 대학교와 어느 고등학교에서도 실천하지 못한 독재에 대한 항거를 인천에서 최초로 행동으로 보여줬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의 계승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수록되어 있다. 자라나는 초중고생들에게 4.19의 숭고한 정신을 전하기 위해 교과서에도 실렸다.
2023년 4.19 정신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인천기계공고 4.19혁명인천기념사업회’가 탄생했다. 당시 시위에 직접 참석했던 주역 20여명이 중심이 됐다. 매년 기념식 개최, 명사 초청 강연 및 세미나, 모교 기념탑 보존 관리, 유공자 선발 포상 등의 사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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