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폭파’ 광복 직전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부민관 폭파’ 광복 직전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 박웅석 기자
  • 승인 202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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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서 조문기 의사 80주년 기념전

 

부민관 폭파 80주년 조문기 의사 특별전 포스터.

 광복 직전까지 우리 민족은 일제 대한 저항과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광복 한달전인 1945년 7월 24일 경성부의 부민관에서 폭탄이 터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마지막까지 국민들을 선동하고 전쟁터로 몰아넣기 위해 ‘아시아 민족 분격대회’ 열리던 현장이었다.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 조선군 사령관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를 비롯한 고위 관료와 장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일본 제국의 괴뢰 정권인 난징정부와 만주국의 대표 등도 연사로 참여했다. 당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인 유만수(1923~1975) 강윤국(1926~2009) 조문기(1927~2008)는 다이너마이트 시한폭탄을 강연장에 설치해 터뜨렸다. 1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쳤다.

부민관 폭파 의거는 광복 직전에 성공한 마지막 의열투쟁이자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가 굳건했음을 알리는 의거로서 의미가 깊다.
조문기 의사는 경기도 화성 출신이다. 화성시는 지난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을 기념해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특별전시를 개최 중이다. 조의사의 어린 시절과 항일 정신. 친일 청산 등을 보여준다.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이라 불리는 ‘부민관 폭파 의거’와 의거의 주역 중 한 명이자 화성 출신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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