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눈길을 끈다. 칠십잡억(七十雜憶). '칠십이 되어서 들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풀이할 수 있다. 수필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을까. 중국중세사 연구의 거목 박한제 교수가 인생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수필집이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연구 외길을 걸어온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수상록의 화두는 ‘추억’이다. 경남 진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고향의 풍경과 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풍성하게 풀어 놓는다. 마을 앞 개울에 팬티도 벗고 뛰어들거나 밤송이 나무를 흔드는 악동 시절을 눈에 그리듯 묘사한다.
소년 시절엔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용기 내지 못한 소심함을 자책하기도 하고 신발 장수 아버지가 챙겨준 여아 장화가 부끄러워 쉬는 시간 내내 책상에 앉아 있기도 한다. 객쩍음, 애잔함, 아련함, 조급함, 안타까움, 쑥스러움, 아쉬움 등 갖가지 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에 독자들은 이내 빠져들게 된다. 풍경은 진주를 벗어나 추풍령, 원주, 일영역, 통영, 고창, 몽골, 미국을 넘나들고, 웃픈 이야기는 〈선운사에서〉처럼 노년에 들어선 때에도 계속된다(매표소 아가씨와의 대화 대목에서 웃지 않을 이들은 없을 것). 어딘가 어설프지만 내 아버지 같아서 더 정이 가고 공감을 자아낸다.
저자의 수필에 이렇게 끌리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모자람과 어리숙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고, 키작남에 새가슴이며, 손으로 하는 운동을 못 하여 “손발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칭한다. 시골 촌놈이 최고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을 “잘못 든 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나 그 솔직함은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비로소 글에 내면이 담기기 때문이다. 진솔함은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무엇보다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태도는 그 진정성을 더해준다. /출판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