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메이지유신 태동지인 하기시와 조선 최초의 근대 조약지인 강화도는 겉으로는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하기는 섬과 주변으로 이뤄져있으며 시골같은 소도시다. 오래전에 형성된 두 도시 모양새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기시는 일본 수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으로 260여년간 막부의 눈에 벗어나 있어 나름대로 독자세력 형성이 가능했다. 반면 강화도는 서울(한양)과 가까워 예전부터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정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았으며 한양으로 진출입 입구여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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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도시 하기시, 유적 넘쳐나
하기는 에도막부 시대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의 본거지였다. 막부 유적이 많아 ‘지붕없는 박물관’ ‘작은 교토’로 불린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5개나 있다. 성주가 살던 하기성을 비롯해 성밑의 마을, 요시다 쇼인의 송하촌숙, 근대화 인물의 탄생지 등 볼거리가 많다. 100여년전 고지도를 들고 지금도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도시 형태는 크게 변한게 없다. 대도시에서 하기시를 오가는 기차의 선로도 아직 단선이다. 우리나라에 단선 철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동해쪽과 접하고 있는 일본 하기시는 삼각주 형태의 섬과 주변으로 이뤄진다. 워낙 육지와 붙어있는 것같아 섬이라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섬이 육지를 둘러싸고 폭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50여m길이의 다리 10여개가 섬 주위를 이어준다. 인구는 4만9000여명이 면적은 700여㎢이다. 도로가 잘 발달돼 자전거로 여행하기 좋다. 산이라 부를만한 높은 산도 없고 도시 전체가 비교적 평지다.
얼마전 가보니 시가지는 매우 깨끗했고 분위기는 강화도와 비슷했다. 버스터미널은 한산하고 주로 노인들만 눈에 띈다. 강화도 터미널에 와있는 느낌이다. 기차로 하기에서 야마구치나 시모노세키, 나가토시 등 큰 도시로 나가려면 아침 일찍(7시~9시)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밤이 되면 적막강산이다. 어둠이 짙게 깔려 돌아다니기가 무서울 정도다. 빈집이 늘어나는 듯 했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재래시장도 한산하다.
하기시 특산물은 도자기와 유리, 귤, 어묵 등이다. 특히 도자기인 하기야키에는 임진왜란 당시 붙잡혀 온 조선 도공의 얼이 담겨져 있다.

◆근대 첫 조약지 강화도
조선은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 조약을 맺는다. 이른바 강화도조약이다. 조약전 이미 강화도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며 프랑스군, 미군과 일전을 치렀다. 강화도는 한강과 예성강, 임진강의 3대 하천에 몰리는 어귀이자 서울의 관문이자 군사적인 요충지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수난의 현장이었다. 당시 강화는 인천과 별개였으며 강화유수부로 인천도호부보다 상급 기관이었다. 광복후 경기도로 편입됐다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돼 인천시 강화군이 되었다.
오랫동안 조선은 일본에 대해 교린(交隣) 정책을 펴고 있었다. 일본이 갑자기 조약을 맺자고 하니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 데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박규수 등 일부에서 개화의 필요성을 인정해 조약이 맺어진다.
강화도 조약 장소인 연무당 터는 강화대교를 건너 자동차로 5~10분이면 닿는다. 차로 달리다보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강화도는 성공회성당 ,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을 물리친 정족산, 신미양요때 미군과 일전을 벌인 광성보 덕진진, 일본 운요오호와 맞붙은 초지진 등 근대 유적이 많다. 고려 무인정권 시절 40년간(1232년~1270년) 도읍지였기에 고려 유적이 많다.
강화도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다. 근대 유적외에 걸어서만 다녀도 여기저기서 고대 중세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인구 7만명이며 면적은 411㎢다. 강화도가 하기시보다 조금 북적 거린다는 느낌이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있다. 지리적 군사적으로 요충지다. 무엇보다 서울(한양)하고 가깝고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서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주요 출입구였다. 그러기에 조선말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강화도에서 일어났고 일본이 강제 개항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1875년 운요오호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인천(당시 제물포)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을 몰랐다. 조선은 강화도를 군사요지로 여겨 5진7보54돈대를 설치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이 있으며 팔만대장경이 강화에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보관한 정족사고, 왕실서적 도서관인 외규장각, 고려궁지, 마니산, 전등사, 보문사 등의 유명 사찰이 있다. 해양관방유적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 등재가 추진 중이다. 인삼 화문석 순무 새우젓 약쑥 등이 특산물이다.
강화도는 1960년대까지는 교통이 불편한 시골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인구가 10만이 넘었으며 소득도 높은 부자 지역이었다. 화문석과 염직 등 이 지역 특산물이 전국에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1969년 강화대교가 놓였으며 2002년에는 초지대교가 개통돼 서울 인천 등 수도권과 한층 가까워졌다.
◆하기시 이모저모
하기시는 1968년 울산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결연이유가 한일 두 나라 가운데 가장 가까운 거리의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년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 계획이다.
하기시도 일본의 대다수 시골답게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밤이면 인적을 만나기 힘들 정도다. 대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하기성에서 만난 중학생들은 빅뱅과 엑소를 안다고 했다. 한창 일본 대도시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방탄소년단은 잘 몰랐다. 도심에서 시골까지 전파되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기자는 스마트폰으로 방탄소년단과 엑소의 노래를 들려줬다.
시모노세키에서 하기시까지 가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부산에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로 동해를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파란 바닷물과 섬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일본인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 건너편엔 무엇이 있을 까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다. 농어촌의 풍경은 한가롭기 그지없고 논밭의 경지 정리가 잘 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모노세키에서 하기까지 하려면 한두번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작은 도시이기에 완행 열차만 다닌다. 오히려 여행객들에게는 여러 가지를 구경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