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훈맹정음, 강화 출신이 만들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훈맹정음, 강화 출신이 만들다
  • 이두 기자
  • 승인 2018.01.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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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 1926년 한글 최초 점자 훈맹정음 만들어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만져서 글을 알게 하다
인천 남구 학익동 점자도서관.

◆강화서 태어나 한때 독립운동가 꿈꿔, 영화학교 교장 맡기도 해
 지난해 11월 29일 인천시 남구 학익동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점자기념관이 생겨 인천 시각장애인 1만3800여명이 더욱 쉽게 글과 책을 접하게 됐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를 만들어 지식의 눈을 뜨게 만든 인물이 바로 박두성(朴斗星·1888~1963)이다
 송암(松庵) 박두성은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최초의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어 맹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린다. 그는 평생을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과 점자 제작, 발명에 힘썼다.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송암 박두성 기념관이 있다.
 박두성은 1888년 인천 강화군에서 박기만의 6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송암은 강화도 출신 독립운동가인 이동휘(1873~1935)가 내린 호이다. 박두성은 이동휘가 세운 강화 보창학교 출신이다. 학교 졸업 후 흉년이 들자 고생하던 식구들을 위해 교동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가서 가게 점원을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심한 눈병에 걸려 고생하다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후 한성사범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진학, 교육을 통한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때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도 꿈꾸기도 했다. 이동휘가 그를 아껴 송암이라는 호를 내린 것도 이 무렵이다.
 박두성은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어의동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제생원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교사로 부임하여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했다. 제생원 맹아부에서 맹인들이 졸업 후 침구술, 안마업계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그는 당시 일본어로 된 점자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제생원 맹아부 근무 당시 점자 제판기를 도입해 한국 최초의 점자교과서를 출판했다. 그리고 1921년 ‘한글3·2점식 점자’를 완성한다. 조선맹아협회를 조직한 것도 이 해였다. 1923년 조선어 점자 연구 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한글 점자 연구에 매진하여 1926년 최초의 한글 점자로 오늘날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훈맹정음’을 발표하였다.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훈맹정음을 연구한 지 3년 만이었다.
 1931년 그는 신약성서를 점역했다. 맹인들 누구나 예수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1936년 제생원 교사를 퇴임하고 인천시 영화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한글 점자 보급에 힘썼다. 1940년 조선 맹아 사업 협회 조직하고, 점자 통신 교육을 시행하였다. 1945년에는 인천광역시 시각 장애인 회람지인 ‘촛불’을 발간하기도 했다.
 박두성은 육필 원고로 「한글 점자 쓰는 법」, 「훈맹정음의 유래」, 「한글 점자의 유래」 초고를 남겼고, 『3․1 운동』을 직접 저술하여 시각 장애인에게 역사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가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보급한 책은 총 76점이다.

“능숙한 목수는 상한 나무도 버리지 않는다. 눈먼 사람들을 위하여 점자가 있으니 이것을 통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다.” 송암 어록의 한 대목이다.

1953년 무렵 박두성은 중풍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박두성은 반신불수 상황에서도 아내와 딸 등을 재촉해 원판 재제작에 나섰다. 이때 합세해 일을 배운 이가 한국 첫 점역사 이경희(80)씨이다.
 박두성이 활동했던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립서울맹학교 내에도 박두성의 추모비가 있다. 비문은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이 그의 서거 3주기를 추모하며 쓴 글이다. 추모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점자판 구멍마다 피땀괴인 임의 정성/어두운 가슴마다 광명을 던지셨소/이 아침 천국에서도 같이 웃으시리라/남의 불행 건지려고 자기 행복 버리신 임/한숨을 돌이켜서 임마다 노랫소리/그 공덕 잊으리까 영원한 칭송 받으소서.”
 한국 점자의 새로운 역사를 연 박두성은 1963년 8월 율목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남동구청 옆 야산에 안장되었다. 최근 인천시 남동구 협의회가 묘역 정비 사업을 펼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박두성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2년에 국민 포장을 수여하였고, 1992년에 은관 문화 훈장을 추서하였다. 1991년 인천광역시 중구에 송암 생가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1999년에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내에 그를 기리는 송암 박두성 기념관이 설립됐다. 2002년에는 문화관광부,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에서 4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박두성과 제생원 맹아학교 수업 장면.

◆남구 학익동 점자도서관, 매월 점자책 제작
 인천시 남구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들어선 점자도서관은 예산 21억원을 들여 3층 규모로 건설됐고 열람실, 전자도서제작실, 녹음실 등을 갖췄다. 송암점자도서관은 1608종 3673권의 점자도서가 있다. 일반 독자들이 많이 찾는 소설류를 중심으로 한 달에 5권 정도의 책을 점자책으로 제작하고 있다. 책을 사들이면 점자책으로 만들고, 다시 오디오 책으로 녹음해 시각장애인이 소리로도 책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송암박두성기념관에는 고통을 이기고 만들어낸 성경 원판이 전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제판기, 인쇄 롤러 등 다양한 박두성 유품이 산 역사로 남아 있다. 송암 기념관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배우는 밀랍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침구술을 가르치기 위한 해부학 실습 풍경과 맹인들이 점자 교재를 읽고 있는 모습이 있어 그의 시각장애인 사랑을 보여준다.
 ◆훈맹정음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훈맹정음(訓盲正音)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한글 점자 체계를 말한다. 본래는 야간전투에서 군사용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만져서 읽을 수 있도록 고안된 야간문자가 있었다. 1829년 프랑스 맹학교에 재학중이던 루이 브라이유가 오늘날 사용하는 것과 같은 가로 세줄, 세로 두줄로 된 점자체계를 발명했다. 송암 박두성은 이를 응용해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했다. 훈맹정음은 훈민정음과 마찬가지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있다. 된소리와 이중받침도 점자로 표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섯 개의 점은 두 줄로 123, 456으로 이뤄져 있다. 예를 들어 ‘ㄱ’은 4, ‘ㄴ’은 1~4를 블록으로 점을 찍어 표시한다. 접속부사나 전화번호 등 숫자를 쓸때도 표기하는 방법이 있다.
훈맹정음은 세로 3점, 가로 2점 모두 6점으로 구성되며 64개 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전에 송암은 "점자는 어려운 것이 아니니 배우고 알기는 5분이면 족하고, 읽기는 반나절에 지나지 않으며, 4~5일만 연습하면 능숙하게 쓰고 유창하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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