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68년 12월’…각인된 국민교육헌장
‘응답하라 1968년 12월’…각인된 국민교육헌장
  • 이두 기자
  • 승인 2015.12.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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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초. 전국 초중고는 학교별로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학생들은 시험만 끝나면 겨울방학을 맞는다고 한편으로 들떠있었다. 12월 초 어느날 오후 늦게 담임교사가 무거운 얼굴을 하고 교실 탁자에 섰다. 회초리가 한손에 들려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외워야 한다고 했다. 며칠내로 외우지 못하면 벌을 받는다며 회초리로 탁자를 쳤다. 중고생들은 그렇다 쳐도 초등생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외워야했다. 그러나 393자나 되는 긴 글을 며칠만에 외우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적지않은 학생들의 손바닥과 종아리가 회초리와 친해져야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중략>/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대통령의 국민 의식 개혁 작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당시 석학이었던 박종흥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1968년 12월 5일 선포식이 열렸다. 박정희 정권동안 국민교육헌장은 국민의 정신을 지배했다. 학교와 관공서 조회때면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해야 했다. 학교 시험은 물론 입사 시험에도 출제되었다. 교과서 앞페이지에는 국민교육헌장 전문이 실렸다. 당시 몇몇 교수와 지식인들이 국민교육헌장이 교육상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다 교단에서 쫓겨나야 했다.
 1980년대 들면서 국민교육헌장은 국민의 관심에서 크게 멀어졌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국민교육헌장 개정 및 폐지 움직임이 일어났다. 1990년대 들어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각종 기록과 의식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5070세대에게는 국민교육헌장의 부분부분이 외워질만큼 뇌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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