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펄벅의 인류 사랑을 이어받다
부천, 펄벅의 인류 사랑을 이어받다
  • 박웅석 기자
  • 승인 2018.04.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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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재단과 협약맺고 사업 공동 개최...펄벅, 부천에 소사희망원 세워 2000명 돌봐

 

펄벅여사와 부천 소사희망원 아이들.

부천시가 부천과 인연이 깊은 펄벅(1892∼1973) 여사의 문학과 인류 사랑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에서 펄벅재단과 펄벅여사의 문화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부천문화재단은 부천펄벅기념관을 중심으로 한 문학 관련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사업 추진방향은 크게 3가지로 ▲국제교류 추진 ▲연구기능 강화 ▲시민참여 확대 등이다. 부천은 펄벅여사의 문학 정신을 이어받아 문학 도시로도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부천 희망원 출신들 삶 추적
부천시는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 펄벅여사의 박애 정신과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최근 미국 펄벅인터내셔널 재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3월 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퍼커시에서 열린 '펄벅 문화 교류를 위한 양해각서' 체결식에는 송유면 부천 부시장과 자넷 민처 펄벅인터내셔널 총재가 참석했다. 두 기관은 펄벅 여사와 관련한 공동 사업을 발굴해 추진하기로 했으며, 부천시는 펄벅인터내셔널의 한국 문화·역사 전시회 개최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 펄벅인터내셔널은 부천시가 추진 중인 펄벅 유물 확보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펄벅 국제문학상의 상명(賞名) 사용 등도 지원하기로 했다. 송 부시장은 "부천시가 펄벅이라는 문화자산을 갖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며 "펄벅과 관련한 사업으로 유네스코 창의 문학 도시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펄벅 여사는 1960년대 초 우리나라를 찾아 1963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를 집필했다.
 부천에 있는 펄벅기념관은 상반기 중 미국 펄벅인터내셔널, 중국 쩐지앙(鎭江)시 펄벅기념관과 국제교류를 통해 유물현황과 연구자료 등을 공유하고 부천 속 펄벅과 문학사업을 국제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미국은 펄벅 작가의 출생지, 중국은 유년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보낸 곳이다. 하반기엔 부천펄벅기념관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국제학술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국내 펄벅 연구 활성화와 연구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학술 세미나와 강연도 준비하고 있다. 또 소사희망원 출신 1030명에 대한 첫 추적조사를 통해 펄벅의 국내 업적을 발굴하고 다음 해에도 관련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방침이다.
 

펄벅재단과 부천시 업무 협약식.

◆부천에서 혼혈아 돌봐
펄벅은 1967년 부천시 심곡본동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해 고아·혼혈아동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쳤다. 소사희망원은 기업인인 유일한(1895∼1972)이 기부한 유한양행 소사공장 터(성주산 아래) 3만3058㎡(약 3만 평)에 들어섰다. 훗날 펄벅은 "수백 명의 아메라시안 아이들이 참석한 개원식 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술회했다.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소사희망원에는 2000여 명의 혼혈아가 거쳐 갔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자란 펄 벅은 1931년 소설 '대지'를 선보이고 1933년 '아들들'과 '분열된 일가'를 잇따라 펴내 3부작을 완성했다. 이 작품으로 1932년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1938년에는 미국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땅에 뿌리박고 사는 중국 농민 왕룽과 오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대지'는 세계 각국에서 출간됐고 영화로도 꾸며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펄벅이 한국을 무대로 한 또 다른 걸작 '살아 있는 갈대'(초역 당시 제목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를 집필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살아 있는 갈대'는 한미 수교가 이뤄진 1882년부터 1945년 해방 후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까지 4대에 걸쳐 국권을 되찾으려고 헌신한 안동 김씨 일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말의 관료 김일한이 주인공이지만 중국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는 아들 연춘의 활약상이 핵심이다. 제목은 폭력 앞에 굴하지 않는 김연춘의 별명이기도 하다. 펄벅은 미국과 중국에서 식품기업과 제약회사를 세워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지낼 때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고, 그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고자 한국을 찾았다가 소설까지 썼다.
 

부천에 있는 펄벅기념관.

◆2006년 부천 펄벅기념관 개관,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
부천시는 소사희망원 자리에 2006년 부천펄벅기념관을 세웠다. 한국펄벅재단은 지금도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곳은 '살아 있는 갈대' 초판본을 비롯해 80회 생일 때 소사희망원 출신들에게서 선물받은 산수화, 타자기, 가방, 머리핀 등 유품 2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펄벅문학상 공모, 그림 그리기 대회, 문화예술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펄벅재단은 지금도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펄벅여사의 탄생일인 6월 26일을 전후해 펄벅을 기리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도 열린다. 해마다 시민 참여로 열리는 펄벅문학상과 펄벅 탄생 기념 그림그리기 대회, 펄벅 서거 추모식 등도 개최한다. 펄벅문학상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으로 지난해는 작품 300여 편이 접수돼 접수 규모로는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엔 국제 문학상 발판 마련을 위한 관련 조사와 추진 체계 조성에 힘쓸 예정이다.
◆펄벅 “한국은 고상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보석같은 나라”
펄벅은 한국을 칭찬했다.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다. 이 나라는 주변의 중국·러시아·일본에는 알려져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서구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나라다"라고 했다.
"조선인들은 대단히 긍지가 높은 민족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사사로운 복수나 자행할 사람들이 아니었다"라거나 "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는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이 말입니다"라는 대목에서처럼 소설 곳곳에 한국인을 향한 경의와 애정이 묻어난다. '살아 있는 갈대'는 1963년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욕타임스'가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펄벅은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두 편 더 발표했다.
펄벅의 한국 사랑은 소설 쓰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1964년 700만 달러를 희사해 미국에서 펄벅재단을 만들고 이듬해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 차례로 지부를 설립해 혼혈 고아들을 보살폈다. 고아들의 입양을 주선하고 자신도 7명을 양자로 받아들였다. 1960년부터 69년까지 8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몇 달씩 머물며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였다. 펄벅은 이들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아이들"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앞으로 500년 뒤면 모든 인류가 혼혈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시대를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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