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인천 해안방어기지 화도진 아시나요
조선말 인천 해안방어기지 화도진 아시나요
  • 시니어오늘 기자
  • 승인 2018.06.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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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인천 일대서 화도진 축제... 석재 질이 좋은 강화용재 사용해 1879년 완공

 

동인천역 일대에서 벌어진 화도진 축제.

인천 동구의 대표축제인 제29회 화도진축제가 지난 5월 18일과 19일 동인천역 북광장과 화도진공원 일원에서 열렸다. 12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였다. 화도진(花島鎭)은 조선말 일본이 인천을 개항지로 요구할 것을 예상해 조정에서 어영대장 신정희, 강화 유수 이경하에게 명령하여 1879년 인천에 설치한 해안 방어 시설이다. 일부에서는 화도진에서‘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최초의 태극기가 제작돼 사용된 장소라고 주장한다.
◆화도진, 조선말 해안방어기지
1875년 강화도에서 운요오호 포격사건이 일어났다. 다음해 반강제로 일본과 강화도조약이 맺어졌다. 조선은 개항을 해야 했다. 해안 경비에 한층 더 신경써야 했다. 특히 한양과 가깝게 있는 인천항 일대는 국방 경비의 주요 장소로 떠올랐다. 고종은 서해에서 서울 입구에 위치한 인천과 부평 연안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 조선 조정은 인천 일대에 진지를 구성한다. 화도진지가 이때 구성된다. 1878년 어영대장 신정희(申正熙·1833~1895)는 진지를 구축하고 포대를 설치한다. 신정희가 이 일을 맡기에는 부친인 신헌인 강화도 진무사 재직시 강화도에 포대 설치 업무를 담당했던 점을 감안해 부친의 경험을 잘 살리라는 뜻도 담겨있었다. 신정희는 1878년 8월 인천 무위소의 협조를 얻어 포대를 설치할 장소를 선정하고 제물진 주변에서부터 포대 축조 공사를 진행했다. 석재는 질이 좋은 강화용재를 사용했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을 제외하고 공사를 벌여 1879년 7월 작업을 마무리했다. 고종은 화도진의 대장격인 별장을 자주 교체하지 않기 위해 임기를 30개월로 정했다. 인천이 정식으로 개항된 이후 화도진은 역할이 축소되다 여러 차례 군제 개편을 거치면서 1894년 갑오개혁 때 없어지고 말았다. 화도진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은 장소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화도진에 가면 밀랍 인형들이 조약 체결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천 동구에서 매년 조약 재현 행사를 치른다. 올해도 재현됐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조약 장소가 인천 파라다이스호텔, 자유공원 언덕 등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면서 논란이 진행 중이다.
◆서울로 통하는 수로 관문
화도진은 19세기 중엽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있던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조선에도 개방을 요구해오자 서해안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축조된 진영이다. 이곳은 수도 서울로 통하는 수로관문이었다. 진은 지방군사를 관리하던 지방 관제의 하나로 진영장 품계에 따라 주진(절도사 종2품), 거진(절제사 정3품), 제진(만호, 도위종4품)이 있었으며, 화도진은 만호와 도위가 주재하는 제진에 속한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다른 제진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70~80명의 병사가 주둔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화도진은 1988년에는 화도진도를 기본으로 복원하였다. 현재 통상수령 등이 정무를 집행했던 동헌 그리고 안채, 사랑채 등이 자리한다. 안채에는 보료, 반짇고리, 버선장, 3층장 등 각종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고, 대청마루에는 찬장과 쌀뒤주, 장탁자 등 당시의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또 전시관으로 개조된 행랑채에는 장군의 영정을 비롯해 무기류와 집기류 등 군사 장비가 전시되어 있다.화도진지 부근은 소나무와 정자, 벤치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개항기에 제작된 지금의 인천시 남구를 포함한 인천도호부를 보여주는 화도진 지도인 화도진도(花島鎭圖)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방상의 이유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화도진도는 진영과 각 포대 시설은 물론 인천도호부 관아의 건물 배치 및 산천 이름, 그리고 지금은 매립되어 사라진 연안의 섬 이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지도이다. 지도의 우측 상단에는 화도진에서 관할하는 6개 포대, 인천도호부 방어영 관할 2대 포대의 읍진까지 거리를 명시하였다. 그리고 포대마다 그 명칭과 포좌의 방향 및 포혈 수가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입에 대비한 인천도호부의 관방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화도진의 조미수호조약 재현 장면.

◆시민들의 역사 공원으로 거듭난 화도진
한미수교 100 주년이 되는 지난 1982년 인천시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화도진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1883년 기념 표지석을 세웠다. 1988년 12월에 동헌, 안채, 사랑채, 전시관 등 옛 화도진지를 기본으로 화도진 병영을 완전 복원하고 각종 편의 시설 및 부대시설을 갖춰 도심의 아늑한 휴식공간으로 조성 시민들에게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거듭 태어났다.
 화도진은 구한말 인천 앞바다의 해안경계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신미양요와 운양호 사건 등 미국, 프랑스, 일본의 잇따른 내습에 자극받아 수도 서울의 유일한 수로관문이었던 현 화수동 138번지 일대에 위치하여 있다. 현재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있다.
 동헌은 관리들이 집무를 행하던 장소로 당시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내사는 안주인의 거처로 안채라고도 부르며 안방에는 보료, 반짇고리, 버선장, 3층장, 반닫이 등 각종 유물들이 진열되어있고 대청마루에는 찬장과 쌀뒤주, 장탁자들이 당시의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학덕이 높고 사회적 지위나 가세가 넉넉할수록 그 규모가 크고 당대 사회문화의 척도로서 주인의 정신적 성향, 경제적 능력을 말해주는가 하면 수군기지였던 화도진에서의 사랑채는 병사들이 기거하던 병영건물의 하나로 사용했다.

조선말 화도진도.

 

◆136년전 모습을 보여주는 화도진 축제
올해 29회 화도진축제는 ‘한미수호통상조약 제136주년 화도진의 빛’이라는 주제로 개최돼 대표 프로그램인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재현’, ‘어영대장 축성행렬’ 등 화도진의 역사성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진행됐다. 화도진축제의 서막을 알리는‘어영대장 축성행렬’은 의장대 사열, 검무, 전통무예시범 및 대포시연 등이 가미된 ‘교지하사식’을 필두로 대형인형 퍼레이드, 전통무예단, 취타대, 군악대, 600여명의 주민 참여 등 화도진축제만의 퍼레이드를 구성하여 많은 주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화도진 축제는 서막을 알리는 2.5km구간의 ‘어영대장 축성행렬’을 시작으로 한미수교 136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되는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 재현’,‘전통군영거리 재현’ 등 다양한 역사적 프로그램이 펼쳐졌다.‘어영대장 축성행렬’에서는 교지하사식을 비롯해, 의장대 사열, 검무, 전통무예시범과 대포시연, 대형인형 퍼레이드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무대공연으로는 퓨전비보이, 뮤지컬 갈라쇼 EDM 등 다양한 현대공연과 남사당놀이, 지역예술인이 함께한 전통공연 등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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