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연기자여야 한다(검사의 세계3)
검사는 연기자여야 한다(검사의 세계3)
  • 김별 변호사
  • 승인 2019.01.2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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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앞에서 부모 혼내면 당시 상황 자세히 실토
부모에 한참 큰소리, 부모 왈 "전 선생님인데요"

K선배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검사는 연기자여야 해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내서는 안되지대신 화가 안나도 어떤 땐 화 내는 척 해야 해.
애들 기소유예하려면 부모를 불러 크게 혼내나 때문에 부모가 욕을 듣는구나 눈물 나게 해. 선도를 맡은 선생님이나 선도위원은 깍듯하게 하고.
K선배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리버리들 특히 나는 어찌할지 모르는 상황에 부닥치면 부리나케 K선배를 찾았고 그 때마다 거의 대부분 K선배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K선배는 나를 보면 금새 표정을 바꿔 친절하게 그리고 쉽게 난제를 해결해 주곤 했다.
나도 곧 연기력을 시험해 볼 기회가 왔다. 새벽 2시경 자판기에서 동전 몇 천 원을 훔친 소년사건이었다. '초범에 사안 경미하며 깊이 반성하므로 엄히 훈계 후 선도를 위촉하여 이번에 한하여 기소를 유예'할 사건 이었다. 매일 매일 할당받는 많은 사건 중 하나였다.
몇 번을 호통치며 삐뚤빼뚤 반성문을 다시 쓰게 하고 서야 엄마와 학생을 불러 세웠다. 새파란 초임 검사는 거의 10여분간 열살은 많아 보이는 엄마를 닦달했다 .수치심, 자식 잘못 가르친 죄책감에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엄마가 돼가지고 애한테 관심이 없으니 새벽 2시에 나가 이런 짓 하는 것 아니에요! 얼마나 무책임하면 애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도 몰라요? 바늘 도둑 소 도둑 된다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에요? 이 글씨 좀 보세요. 이게 중학교 2학년 글씨에요? ...."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연기로 시작한 건데 나도 모르게 진짜 화가 나는 거였다.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아이가 쓴 반성문을 엄마 얼굴 앞에서 흔들어 대기도 했다. 책상도 쳤었던가. 부임이후 소리지르는 검사의 모습을 처음보는 직원들의 표정이 묘했다.
잠시 후, 아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이제 이 아이는 절대로 재범하지 않을거다. 자기 잘못 때문에 엄마가 다시는 고초를 겪지 않게 할 것이다. 역시 선배 말이 맞았어. 이게 바로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전법이구나. 성공에 만족할 때 쯤이다.
"저.... 검사님...." 10여분간 말이 없던 엄마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에욧! 무슨 할 말 있어요? " 성공적으로 연기는 끝났지만 관성적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근데 저... 선생님인데요. 아이 엄마가 아니라..."
"............. "
"선생님....., 진작에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저는 아이 엄마인 줄만 알고..."
어색한 침묵끝에 최대한 공손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말씀 드리려 했는데 검사님이 너무 화를 내시길래... 무서워서요.."
곁눈질로 본 직원들 표정이 더 묘해졌다. 웃음을 참는 것일까.

※필자 김별변호사는 대한민국 검사, 사기업 임원을 거쳐 현재는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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