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한 도시를 가리키다 수도를 뜻하게 돼
◆서울, 그리고 한양㉯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그럼 ‘서울’이란 무슨 뜻일까.
이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慶州)의 옛 이름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에서 나온 말이다. 이중 ‘서라벌’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단어인데 그 뜻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라벌’이나 ‘서벌’은 당시에 쓰이던 우리말 이름을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바꿔 적은 것(한자 차용 표현)이다. 그리고 그 당시 쓰이던 우리말 이름은 아마도 ‘새벌’이었을 것으로 본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발음은 오늘날의 [새벌]과는 다소 달랐겠지만 ‘새벌’이라는 뜻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어떤 이름이었을 것이다. '새벌’은 ‘새 + 벌’의 구조이다. 이중 ‘새’는 우리말의 여러 땅 이름에서 ‘어떤 땅들의 사이(새)’, ‘새롭다’, ‘풀<草>’, ‘새<鳥>’, ‘쇠<金>’, ‘동쪽’, ‘해(태양)’ 등 무척 다양한 뜻으로 사용됐다. 따라서 이 중 어떤 것으로 해석할 것인가는 그 땅의 지형(地形)이나 역사, 옛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 등을 두루 따져 보고 결론 내리는 수밖에 없다. 이중 ‘사이’가 ‘새’가 된 것은 발음이 줄어든 것이고, ‘새롭다’는 뜻은 지금도 ‘새 옷’ 등에 쓰이는 것과 같다. ‘풀’을 ‘새’라고도 함은 ‘억새’ 같은 단어를 통해 알 수가 있고, ‘쇠’는 ‘새’의 발음이 바뀐 형태이다.
또 ‘새’가 ‘동쪽’을 뜻한다는 것은 새벽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별을 ‘샛별(새 + ㅅ + 별)’이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샛별’은 흔히 ‘새벽별’이라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동쪽에서 뜨는 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동풍(東風), 즉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순 우리말로 ‘샛바람’이라고 한다.
이처럼 동쪽은 해가 뜨는 곳, 즉 새로운 하루를 여는 곳이기 때문에 ‘새롭다’거나 ‘처음’이라는 뜻도 갖는다. '새’가 ‘해<太陽>’를 뜻하기도 함은 현대어 ‘닷새, 엿새’ 할 때의 ‘새’가 ‘해(날짜)가 바뀌는 하루’를 뜻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가 있다. 해가 떴다가 지고 다시 새로 뜨면 하루가 바뀌는 것이다. 아침이 밝아올 때 “동이 튼다”는 말을 쓰는데 이는 ‘(새로 해가 뜨면서) 동쪽이 환하게 트인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에서 ‘새벽’이라는 단어도 ‘새롭게 밝아온다’는 뜻의 ‘새ᄇᆞᆰ’이 변한 말로 추정된다. 이런 여러 뜻 가운데 서울을 나타내는 ‘새벌’의 ‘새’는 ‘새롭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다르게 ‘새’를 ‘높다, 고귀하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처럼 다른 해석을 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새롭다’로 해석하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한편 ‘새벌’의 ‘벌’은 ‘벌판’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며 살았다. 이런 곳을 ‘벌’, 즉 벌판이라 불렀다. 이 ‘벌’은 ‘불’<火>과도 통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이에 대해 “(원시 인류가) 농사를 지을 때 처음에는 대개 불의 힘을 이용해 초목을 태워서 밭을 만든 뒤 비로소 시작하기 때문에 옛말에서 들을 ‘불(=벌)’이라 하였던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렇게 벌판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벌판은 하나의 마을이 되고 크게는 나라가 됐다. 이에 따라 ‘벌’이라는 말도 단순한 ‘벌판’에서 ‘동네, 마을’을 거쳐 ‘나라, 땅’이라는 쪽으로 점차 의미가 넓어졌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벌’이라는 글자를 가진 땅 이름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은 ‘마을’ 정도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새벌’(서울)이란 ‘새로운 땅(마을)’이라는 뜻이 된다. 박혁거세(朴赫居世)가 나라를 세워 새롭게 자리를 잡은 땅이라는 얘기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말이 당시에 정확하게 어떤 발음으로 불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뜻은 ‘새벌’ 곧 ‘새로운 땅’이었으리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다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음이 변했고, 훈민정음이 창제된 15세기의 문헌에는 서울을 뜻하는 단어로 ‘셔ᄇᆞᆯ(ㅸ+ㆍ+ ㄹ)’이 나온다. 그리고 그 발음이 또 바뀌어 오늘날 ‘서울’이 됐다.
이렇게 발음이 바뀌는 동안 뜻은 점점 더 넓어져 처음에는 한 마을을 가리키던 것이 경주(서라벌)라는 한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가 이제는 한 나라의 수도(首都)를 뜻하게 됐다.
※최재용은 인천토박이다. 동인천고,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인하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30년간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 이전 부천시에 있는 소명여고에서 국어교사를 지냈다. '월미도가 달꼬리라구?’(다인아트·2003년),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 땅 이야기’(21세기북스·2015년, 2016년 ‘세종도서’로 선정) 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