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산 월미도 등 지명은 어떻게 탄생했나(땅이름1)
서울 부산 월미도 등 지명은 어떻게 탄생했나(땅이름1)
  • 시니어오늘
  • 승인 2019.01.14 19:1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 출신 땅이름 연구가 최재용 '우리 땅이름 이야기' 연재
전국 지명 소개... 역사적 사실과 재미난 뒷이야기도 함께
월미도 문화의 거리.
월미도 문화의 거리.

 예전에 인천에서 활동하는 20여명의 문화유산해설사들 앞에서 우리 땅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은 무슨 뜻인지, ‘부산은 또 무슨 뜻인지. 수많은 우리 땅 이름들의 뜻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런 이름들의 유래와 뜻을 설명하기에 앞서 강연 첫머리에 우리말의 황소가 왜 황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지 그 뜻을 아느냐고 먼저 물어봤다. 몇 사람이 뭘 그리 쉬운 것을 물어보느냐는 표정으로 황소가 누런<> 색깔이니까 황소가 된 것 아니냐고 답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먼저 그 질문을 던진 의도가 이 대답을 예상했기 때문이었기에 바로 정답을 설명했다.
황소는 우리 중세 국어에서 한쇼라 불리던 말이 바뀐 것이다. ‘한쇼+의 형태다. 여기서 크다, 많다는 뜻을 가진 형용사 하다의 관형형이고, ‘의 중세 국어 형태다. 결국 한쇼큰 소라는 뜻이다. 이 말이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발음이 바뀌어 황소가 된 것이다. 이는 황새도 마찬가지다. 중세국어에서 큰 새라는 뜻으로 한새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바뀌어 오늘날의 황새가 됐다.”
  문화유산해설사들에게 이 질문을 먼저 던진 것은 땅 이름의 뜻을 밝히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땅 이름 중 상당수가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전국 곳곳의 땅 이름 해석을 보면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른 채 그냥 지금의 이름을 보고 대충 해석하거나 근거 없는 전설을 끌어붙여 설명하는 잘못이 당연한 것처럼 널리 퍼져 있다.
문화유산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해설사들마저 거의 모르는 이런 내용을 일반 사람들이 알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이날 강연 이전이나 이후에 가진 여러 차례의 다른 강연에서도 같은 질문을 먼저 던져봤지만 정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땅 이름은 우리말의 한 부분
땅 이름의 뜻을 밝히는 작업에서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땅 이름이 우리말(국어)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먼저 말한 중세국어의 한쇼한새가 오늘날 황소황새가 된 것처럼 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땅 이름도 우리말의 일부이니 당연히 같은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땅 이름은 이전의 어떤 다른 모습이 바뀌어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땅 이름의 뜻을 제대로 밝혀내려면 고대어와 중세어를 포함한 우리말에 대한 지식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물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땅 이름들은 아직 이런 변화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도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당연히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각 지역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땅 이름 설명은 거의 모두가 이런 사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언어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 유래를 대충 해석하고는 그것이 맞는 것처럼 퍼뜨려왔기 때문이다이런 잘못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지금의 이름꼴을 보고 그에 맞춰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천의 유명 관광지인 월미도(月尾島)에 대해 <>의 모양이 달<>의 꼬리<>처럼 생겨서 생긴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하지만 월미도는 지금의 이름 이전에 얼미도라 불리다가 발음이 바뀐 것으로, <>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름이다. 이는 황소가 누런 소여서 황소라 불린 것이라는 해석과 똑같은 잘못이다.
둘째는 근거 없는 전설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시 강화도와 경기도 김포시 사이에 있는 좁은 물길 손돌목에 대해 “‘손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뱃사공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하지만 손돌좁은 목()’이라는 뜻의 우리말일 뿐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이처럼 잘못된 땅 이름 해석이 널리 퍼지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우선 이런 식의 해석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학적 지식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또 전설에 꿰어 맞추는 해석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내용이 재미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빠르고 쉽게 퍼질 수 있는 좋은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해석이 판을 치는 반면 제대로 된 해석은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타당한 해석 찾아내야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우리 역사의 초기, 문자가 없던 시절에 생긴 땅 이름들은 거의 모두가 그 지역 공동체가 흔히 쓰던 말로 붙인 쉬운 것들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이름으로 예를 든다면 개건너(강이나 바다의 건너편), 산뒤(산의 뒤쪽), 무너미(물이나 산 넘어 있는 곳)와 같은 식이다.
그런데 문자가 생겨 이를 적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생겼다. 우리말을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 체계에 맞춰 적을 수 있는 한글이 나오기 전에 한자가 들어와 1000년이 넘도록 먼저 쓰인 것이 우선 문제였다. 이두(吏讀)나 향찰(鄕札)처럼 한자의 소리와 뜻을 섞어서 우리말을 적으려다 보니 무척 복잡한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옛 자료에 나오는 여러 이름이나 노래(향가) 등을 놓고 계속 해석이 분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 세종 임금 때 한글이 생기면서 이런 문제는 거의 해결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하지만 땅 이름은 그동안 이미 많은 변화를 겪은 뒤였다. 특히 우리말 땅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형이 생긴 터라 그 해석을 무척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글이 태어난 뒤에 생긴 땅 이름이라고 해서 해석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글 이전 시대의 이름보다야 쉽겠지만 이 역시 오늘날까지 수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형을 거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땅 이름은 문헌에 남아있는 옛 이름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 비슷한 계열(系列) 이름들과의 대조(對照), 해당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상황, 우리말의 음운·의미 변화 등을 두루 따져 해석해야만 그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땅 이름은 끊임없이 변해온 것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특히 큰 변화가 생긴 시점이 몇 번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통일신라 경덕왕 16(757)에 여러 음절로 이루어진 땅 이름의 상당 부분을 두 음절의 한자어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사벌주>상주, 삽량주>양주 등의 변화가 이때 일어났다.
 1914년 일제가 우리나라 전체의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지역 이름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꾼 것도 무척 큰 계기였다. ‘분점리+당우리>분당’, 관청리+향교리>관교동과 같은 식의 변화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광복 뒤인 1946년 전국에 깔린 일제식 행정구역 이름을 우리식으로 바꾼 것도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한다.(‘신정>신포동’ ‘도산리>도림동)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땅 이름들은 모두가 이런 과정들을 두루 거쳐온 것이다. 땅 이름의 뜻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사실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연구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해도 그것이 꼭 맞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단 하나만의 정답(正答)이 있을 수 없는인문과학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결국 객관적으로 가장 타당성이 있는 설명과 해석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며, 그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어학적 접근일 수밖에 없다. 땅 이름도 언어의 일부분으로 우리말과 역사를 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땅 이름 해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설들을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고, 그리 하려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과는 어떤 면으로든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시니어 오늘에서 시작하는 우리 땅 이야기는 이런 문제를 좀더 대중적인 차원에서 함께 얘기하고 생각해 보자는 뜻에 따른 것이다. 이에 맞춰 앞으로 전국 곳곳의 땅 이름 유래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 살펴보기로 한다. 언어학적 설명 때문에 글이 너무 딱딱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 이름이나 지역에 얽힌 역사적·사회적 사연이나 전설 등도 함께 이야기해볼 계획이다.

최재용은 인천토박이다. 동인천고,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인하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30년간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 이전 부천시에 있는 소명여고에서 국어교사를 지냈다. '월미도가 달꼬리라구?’(다인아트·2003),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 땅 이야기’(21세기북스·2015, 2016세종도서로 선정) 를 펴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신형준 2019-01-15 13:53:44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최재용 기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