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의 명칭 시리즈 두번째다. '부산’의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ᄀᆞᆷ’과 ‘수리’라는 우리 옛말의 뜻을 알아야 한다. 먼저 ‘ᄀᆞᆷ’은 신(神)이나 그 정도로 신성하고 높은 존재를 뜻하던 순우리말 단어였다. 지금은 사라져 거의 쓰이지 않지만 여러 가지 변형(變形)으로 그 흔적을 남겨놓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한 예로 요즘도 TV 역사극 등을 보면 많이 나오는 ‘임금’이나 ‘상감(上監)마마’의 ‘감’이 바로 이 단어다. 이 ‘ᄀᆞᆷ’은 시간이 흐르면서, 또 지역에 따라 다른 발음을 가진 변형(變形)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감, 검, 곰, 굼, 금, 고마, 구마, 가마, 가모, 개마, 거미, 거물, 거북…’ 등이 그것이다.
현대 일본어에서 신(神)을 뜻하는 ‘가미’나 ‘곰<熊>’을 뜻하는 ‘구마’도 고대에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생긴 말로 본다.
현대어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고맙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고맙다’는 ‘고마 + ㅂ다’로 분석되며, ‘-ㅂ다’는 ‘학생답다’ 등의 표현에서 보듯 ‘(무엇과) 같다’는 뜻을 갖는 말이다. 따라서 ‘고맙다’는 말은 원래 ‘(당신은) 고마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세어까지만 해도 ‘고맙다’는 말은 ‘감사하다’는 뜻이 아니라 ‘존귀하다, 높이다, 아끼다’와 같은 뜻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감사하다’는 뜻이 생겨 요즘은 이 뜻만 남고 나머지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사람 머리의 꼭대기에 있는 ‘가마’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땅 이름에서도 ‘ᄀᆞᆷ’은 이런 여러 가지 뜻으로 두루 사용됐다. '신성한 땅’이나 ‘뒤쪽(북쪽)에 있는 땅’, ‘넓은 땅’ 등의 의미로 이 ‘ᄀᆞᆷ’ 계열 땅 이름이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땅 이름들은 한자로 바뀐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대부분이 원래의 이름 유래를 알아채기 어렵다.
이 ‘ᄀᆞᆷ’ 계열 땅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쓴 한자들을 보면 ‘儉(검), 劍(검), 金(금), 甘(감), 巨門(거문), 金馬(금마), 甘勿(감물), 固麻(고마), 古莫(고막), 加莫(가막), 駕幕(가막), 紺岳(감악), 久麻(구마), 蓋麻(개마)…’ 등을 찾을 수 있다.
글자는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가 한자의 뜻과는 아무 관계없이 그저 소리만 빌려 우리말 이름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당연히 그 뜻도 모두 ‘ᄀᆞᆷ’의 범위 안에 있다.
이보다 더 복잡한 것은 한자의 소리 대신 뜻을 빌려다 이름에 쓴 경우다. ‘熊’ 외에도 ‘龜(거북 구), 黑(검을 흑), 漆(검을 칠), 玄(검을 현), 釜(가마 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黑, 漆, 玄’은 ‘검다’는 글자 뜻의 ‘검’이 ‘ᄀᆞᆷ’의 변형인 ‘검’과 발음이 같다는 점에서 끌어다 붙인 것이다. 또 ‘龜’와 ‘釜’는 앞에서 말했듯이 ‘거북’과 ‘가마’라는 이들 글자의 뜻이 ‘ᄀᆞᆷ’의 변형인 ‘거북’이나 ‘가마’와 같다는 점에서 끌어다 붙인 것이다.
이처럼 ‘부산(釜山)에 쓰인 ’釜‘가 ’ᄀᆞᆷ‘의 변형인 ’가마‘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 한자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앞의 홈페이지에 나온 다음 내용을 다시 한 번 보자.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일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釜山浦)이다.…”
이처럼 부산은 ‘밑에 있는 포구에서 바로 쳐다보이는 산이 가마솥 모양과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마 모양으로 생겼다는 산이 어느 산을 말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한 부산시의 공식 입장은 홈페이지에서 밝혔듯이 오늘날 동구 좌천동 북쪽의 ‘증산(甑山)’이 바로 이 가마솥 모양의 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 이름에서 ‘증산(甑山)’은 ‘시루뫼’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시루’는 떡을 찌는 도구 시루가 아니라 높은 곳이나 산(山)을 뜻하는 우리 옛말 ‘수리’의 변형이다.
다시 말해서 ‘증산’은 ‘시루 모양의 산’을 말한다면 모를까 ‘가마 모양의 산’을 뜻하는 이름으로는 쓰이지 않기 때문에 부산시의 설명은 틀린 것이다.
※최재용은 인천토박이다. 동인천고,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인하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30년간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 이전 부천시에 있는 소명여고에서 국어교사를 지냈다. '월미도가 달꼬리라구?’(다인아트·2003년),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 땅 이야기’(21세기북스·2015년, 2016년 ‘세종도서’로 선정) 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