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은 벌거숭이
1. 몇년전의 일이다.
급하게 약을 살 것이 있어 약국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찾고 있는데
네다섯살 꼬마가 "할머니 무슨 약 찾아요?"
..........
"할머니 무슨 약 찾아요?"
설마 나?
뒤돌아보니 약국 안에는 꼬마와 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어...뭐 이런...
"으~ㅇ. ** 약 찾는데 넌 혼자왔니?"
" 아니요. 아빠 기다려요."
"그렇구나."
얼마나 화가 나던지 집에 와서 "허 기가막혀서. 이렇게 젊은 할머니가 어딨어? 소리소리를 질렀다.
2. 2년정도 되었나?
우리집은 2층, 바로 아래 1층은 어린이 집이다.
집에 가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젊은 엄마가 서너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도 못하는 꼬맹이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 ㅇ ㅇ"하니까 엄마가 뒤돌아 나를 보더니 "ㅇ~응. 할머니~.
할 머 니!"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꼬맹이가 안보일 때까지 아이를 째려보았다.
"오우씨 못생긴 게 누구한테 할머니래?"
3. 최근의 일이다.
대중 목욕탕에서 열심히 샤워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우 할머니!"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나랑 한 10살 정도 차이나는 아줌마가
"할머니 물 다 튀어요!"
"아 죄송합니다."
목욕탕을 나서며 불끈 불끈 올라오는 것이 있었지만 나의 이성이 귀에 속삭인다.
"목욕탕? 게임오버."
그날 이후 난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이제는 누가 할머니라고 부르면 자연스럽게 "네?"
라고 말할 수 있다.
눈이 정직한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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