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인천 광주같은 광역시 없어... 서울에는 중구 종로구 등 9개구

1964년에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서울특별시와 부산시,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제주도였다. 지금의 대구와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은 당시엔 광역자치단체가 아니었다. 서울시도 9개구(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서대분구 마포구 용산구 영등포)만 있었다.
이 당시만 해도 서울의 인구 집중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통계연감에 따르면 인구가 가장 많은 시도는 경상남도로 418만여명이었으며, 경상북도가 385만여명이었다. 전라남도가 355만, 경기도가 275만, 충청남도가 253만 순이었다. 서울은 245만여명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이어 전라북도 239만, 경상북도 163만, 강원도 137만, 제주도 28만이었다.
1964년 재일교포수는 57만5065명이었다. 오사카에 14만9000명이 거주해 가장 많았고 이어 토쿄 6만3900, 효고 5만6700명, 아이치 4만3600명 순이었다. 이 당시만해도 재일교포의 절대 다수가 북한 편을 드는 조총련에 가까웠다. 이해 외무부는 60만명의 재일교포가 있는데 대한민국에 동조하는 민단 소속은 3분의 1이었고 나머지 3분의 2는 조총련이거나 중립 입장이었다고 발표했다.
1964년 국내 거주 외국인은 총3만3659명으로 중국인이 2만9462명, 미국인 2627명, 일본인 756명으로 중국인이 압도적이었다. 이어 독일인 191명, 네덜란드인 127명, 필리핀인 106명이었다. 출입국수는 전체 4만4811명으로 국제 교류는 꿈도 꾸기 어려운 시대였음이 통계로 나타난다. 출국은 한국인이 2만400, 미국인이 1만 770건으로 절대적이었다. 입국 총수는 한국이 1만5000, 교포가 6250, 미국이 1만1460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