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김재규'는 과연 재평가될까
'10.26 김재규'는 과연 재평가될까
  • 이두 기자
  • 승인 2025.03.0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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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45년만에 재심...내란 목적 다시 판단하기로

 

1979년 10.26후 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1970년대와 1980년대 전환기를 겪은 중장년에게 1979년 10.26을 일으킨 김재규란 인물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과연 김재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긴 인물인가, 아니면 단순히 내란 목적 살인범인가.
법원이 최근 1980년 5월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45년 만에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유족이 2020년 재심을 청구했는데 5년여 만에 김재규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재심은 통상 수사 검사나 수사관이 구타와 고문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을 때 청구할 수 있다. 

재판정에서의 김재규.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체포돼 내란목적살인·내란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1980년 5월 20일 사형을 확정했다. 재심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흘 뒤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지난해 12월 윤석렬 대통령의 계엄으로 방송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정치 영화 바람이 불었다. 올해 설까지 1979년을 돌아보게 하는 ‘서울의 봄’과 ‘남산의 부장들’ 정치 영화가 안방을 찾았다.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역할과 사람됨,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 등이 비교적 소상히 소개됐다.

박정희 대통령 조문.

김재규는 1926년생으로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김천중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했다. 1950년대 중반 사단장과 연대장으로 박정희와 인연이 됐으며 1961년 5.16 당시에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1973년 군단장 전역후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이  됐으며 건설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976년부터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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