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고향에 음악선구자 홍난파전시관 들어선다
화성 고향에 음악선구자 홍난파전시관 들어선다
  • 김현정
  • 승인 2025.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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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청 인근 생가터에 조성 '업적과 친일' 함께 담기로
지역에서 20여년간 찬반 논란... 최근 합의돼

 

화성의 홍난파 생가. 이 일대에 전시관이 만들어진다.

 홍난파는 일제강점기 근대 음악의 선구자였다. 희망은 전혀없고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울분과 아픔을 달래주는 노래들을 잇달아 만들고 발표했다. 그를 기리기 위한 전시관(가칭)이 그의 고향인 화성에 들어설 전망이다. 그의 친일 경력 때문에 오랫동안 건립 찬반 의견이 대립했으나 공공갈등조정협의회가 마침내 합의를 이끌어냈다.
근대음악 전시관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고 전시 공간에 공적과 과오를 객관적으로 표기해 후손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생가에는 홍난파의 업적과 친일 행적을 명확하게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문화예술공간 전시실에도 홍난파와 관련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 업적과 친일 행적을 명확히 표기하기로 했다.
홍난파는 1898년 화성시 남양읍에서 태어났다. 황성 기독교청년회(YMCA) 중학부에 입학해 서양음악을 접했으며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이화여자 전문학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노래로는 ‘고향의 봄’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봄처녀’, ‘금강에 살어리랏다’등이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득담은 노래들이다.
 

수원 팔달산에 있는 '고향의 봄' 노래비

 현재 화성시청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의 생가가 있으며 그 일대에 전시관이 들어선다. 1986년 화성시 남양읍에 생가가 복원되면서 홍난파를 재조명하고 전시관 건립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2004년 생가 일대에 본격적으로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그의 음악적 업적과 친일 행적을 알리는 자료관, 야외음악당, 공원 등을 갖춘 ‘꽃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2004년 42억원을 들여 생가터 일대 4만5000여㎡를 매입했다. 2006년 준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친일행적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며 반대해 지금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전시관이나 기념관 건립이 추진됐으나 그때마다 의견이 갈렸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 친일단체 가입, 친일가요 등을 작곡한 것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생에 커다란 오점이자 위대한 업적을 가리는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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