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초중반 대학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살인마 전두환 물러가라’ ‘군부독재 타도하자’‘주한미군 철수하라’를 외쳤다. 시위는 학생 서클이 많이 모여있는 학생회관이나 식당, 도서관에서 주로 시작됐다. 앞에 학생이 꽹과리를 치거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몇십명의 학생이 대오를 형성해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200~300명이 모였고 시위가 진행됐다.
시위대들이 부른 대표곡 중의 하나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다.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직접 뽑고, 학생 군사교육이 없어지고, 노조가 합법화되는 등 사회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 노래는 지금은 50대가 되었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들에 가슴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랬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 갈등을 일으키며 5070세대마저 갈라놓고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호철(55)씨는 “교정에서 경찰과 학생이 쫓고 쫓기던 장면이 선하다”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정신이 필요해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사회가 많이 민주화됐지만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말자는 취지다.
그러나 김영철(64)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갈등만 키우고 있기에 원하는 사람은 부르고 원치않은 사람은 부르지 않는 것이 맞다”며 기념곡 지정에 반대했다. 시대가 많이 변했으며 북한에 이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5070세대들만 참여하는 한 단체카톡방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놓고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 인사는 프랑스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거론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훨씬 서정적이고 감동적이라며 기념곡 지정을 찬성했다. 이에 대해 다른 인사는 “노래 가사가 나쁜 게 아니라 북한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한 영화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좌파들만 부르는 운동가이기 때문에 기념곡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주관으로 5.18기념식이 열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참석자가 모두 부르는 제창으로 진행됐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2009년 합창으로 바뀌었다. 제창은 참석자 모두가 부르는 것이고 합창은 합창단외에 원하는 사람만 부르는 것이다. 이번 행사때는 기존대로 합창으로 진행됐다. 참석자 대부분 불렀지만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은 부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