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60대 중장년 9명이 강화도에서 만났다. 상당수 초면이었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금세 친해졌다. ‘나이들어 사람사귀기 쉽지않다’는 속설을 통쾌하게 날려 버렸다. 연세대 동문(1명은 고려대 출신 깍두기)이라는 울타리가 단번에 이들을 가깝게 만들었다. 정치적인 뜻을 품고 있는 ‘전국적인 마당발’ 한원일(56·연세대 신학과·한국도시농업 회장)씨가 모임을 주선했다.
이들은 6월 25일 강화도 심은(沁隱)미술관에서 만났다. 전정우(68)미술관장은 강화도가 고향이며 연세대 화공학과 출신이다. 심은미술관은 720종의 천자문이 전시되고 있는 국보급 공간이다. 참석자들은 출신학과와 전직, 현직 등을 서로 알리고 명함을 교환한 뒤 천자문 30점이 진열되어 있는 전시장을 둘러봤다.

전 관장이 한점 한점 세세히 설명했다. 초서·해서·행서체는 물론 왕희지체·추사체 등으로 쓰여진 천자문을 감상했다. 모두가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관장은 “하루 15시간씩 공을 들여 쓴 천자문의 중요성을 알아주어 고맙다”며 “천자문거리와 천자문박물관을 만드는데 온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현재 원본 보관이 쉽지 않다며 강화군과 인천시가 적극 나서주기를 희망했다. 참석자들은 천자문을 후세에 길이 보존할 ‘최후의 9인’이 되기로 다짐했다.
이들은 창우리 포구로 자리를 옮겼다. 교동도와 교동대교가 보였다. 이전 교동도로 배가 오가던 곳이다. 지금은 교동대교가 생겨 선착장의 역할은 사라졌다. 모듬회와 함께 강화도 특산물인 밴댕이와 새우젓이 식탁에 올랐다. 모두가 꿀맛이라며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최고 선배인 김신교(70·화공학과)씨가 즉석에 이태리 노래인 ‘나를 울게 버려두오’와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뽑았다. 서울강남논현시니어합창단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후배이자 오랜 지기인 홍현성(66·교육학과)씨는 김씨의 노래가 끝나자 발표대회 리허설을 여기서 하는 거라며 칭찬인지 야유인지 모를 멘트를 날려 좌중을 웃겼다. 홍씨는 마라톤을 100회 넘게 달린 철인이다. 유일하게 고려대 출신 참석자의 어색함을 덜어주기 위해 고대 응원구호인 ‘입실렌티’를 선사했다. 연대구호인 '아카라카'보다 완벽해 연대서 호적을 파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홍씨는 지난해 ‘지공선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만65세 이상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되었다며 처음 지하철을 그냥 타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60대 참석자들은 50대 후배들의 진면목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김포가 고향인 김종진(66·법학과)씨와 일부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2차로 향했다. 헤어진 후 이틀만에 카톡방이 만들어져 후일담과 모임 명칭이 오갔다. 분위기메이커였던 홍현성씨는 “식구가 늘어 기분좋다”며 “모임명칭을 우리 모두가 외계인같고 연세대 독수리(Eagles)와 고려대 호랑이(Tigers)의 영문 앞자를 따 ET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광재(55·정치외교학과)씨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라며 장문의 메시지를 카톡에 올렸다.
모임을 주선한 한원일씨는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일한 고대 출신인 안능섭(52)씨는 “다음 만남이 언제 이뤄지고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부터 궁금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