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바람...강화도엔 100년전 이미 한옥성당 들어서
한옥 바람...강화도엔 100년전 이미 한옥성당 들어서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6.07.08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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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호텔도 한옥으로 지어...강화성공회 성당은 고종의 의지 담겨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 강화도에 있는 영국성공회 성당으로 1900년 건립됐다.

  한옥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 한옥마을인 서울 북촌을 찾는 내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옥을 짓는 지자체나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  최근 안동으로 이사한 경북도청 청사는 대형 한옥이다. 경북도는 신청사 인근에 한옥 50가구를 더 짓는다. 서울 신라호텔은 장충동에 새로이 한옥으로 호텔을 짓기로 했으며 강릉의 한 호텔도 스위트룸이 한옥이다. 인천 송도에도 2만8000여㎡의 한옥마을인 경원재가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한옥은 건축미와 품격을 나타낸다. 성냥 찍어내듯한 사각형 모양의 대형건축물과 다른 곡선의 미와 고품격을 선사한다.
​ 인천에 이미 100년전에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이 있었다. 강화군 강화읍에 1900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다. 당시 성공회가 강화선교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영국의 해군력을 이용하고자 했던 고종의 의도가 담겨 있다. 고종은 지금의 해군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조선수사해방학당을 강화도에 설립하면서 1894년 영국 해군 대위 콜웰과 포병 교관 커티스를 교수로 초빙하였다. 이에 영국인들이 자연스레 성 안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성공회는 자유롭게 선교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강화도 성당 내부.

성공회 선교사들은 1897년 6월 성바오로 회당을 축성하고 갑곶에도 고아원 형태의 학교와 진료소를 운영하였다. 1898년 성바오로 회당으로 옮기면서 회당은 복음, 교육, 의료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성바오로 회당의 역할이 커지자 트롤로프(Trollope, M, N) 주교는 지금의 자리에 방주 모양으로 터를 닦아 1900년 11월 15일 성당을 신축했·ㆍ다. 도편수가 백두산에서 벌채한 소나무를 자재로 성당을 지었는데, 외부는 한옥 양식으로 하고, 내부는 한옥 자재를 사용하되 바실리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모습이었다.
​  사적 제424호(2001년 1월 4일 지정)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다. 문에는 태극 문양을 본뜬 원 안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성공회 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당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0칸의 2층 한옥 양식으로, 지붕 위 용마루 양 끝에 십자를 올렸다. 성단의 뒤쪽에는 1903년 반가(班家)의 형식으로 만든 주교관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1986년 신축하였고 현재 사제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강화성공회성당 현재 모습. 건립 당시와 큰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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