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부천 복숭아는 어디 갔을까
그 많던 부천 복숭아는 어디 갔을까
  • 시니어오늘 기자
  • 승인 2017.08.1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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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복숭아축제...1970년대까지 전국 명물, 근대화 도시화로 사라져

 

1970년 부천 복숭아시장. 부천 복숭아는 당시 전국의 명물이었다.

부천시는 매년 여름철이면 성주산 인근인 부천여중에서 복숭아 축제를 연다. 올해도 8월 11일과 12일 '소사 복숭아축제'를 연다. 소사는 부천의 옛이름이다. 축제는 복숭아먹기와 복숭아껍질 길게 깎기, 씨 멀리뱉기 등 다채롭게 펼쳐진다. 모형 복숭아에 소원을 적어 솟대모양의 장대에 매다는 이색 행사도 열리고 현장에서 복숭아도 판다. 
 부천 복숭아는 1970년대까지 대구의 사과, 나주의 배와 함께 전국 3대 명물 과일로 꼽혔다. 당시 사회책에도 소개될 정도로 인기였다. 주말이면 경인선 철도 인근으로 복숭아를 판매하는 원두막과 농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들어서 부천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본격 개발된다. 지금의 경인전철 중동역 송내역 소사역 일대가 복숭아 과수원이 있던 곳이다.
부천 복숭아는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정착하면서 복숭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02년 소사농원이 생겼고 1904년 일본에서 들어온 4개 복숭아 품종이 재배됐다. 일본인들은 평지형태의 부천 지형과 토질이 복숭아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복숭아 재배를 확대해 나갔다. 광복후 1960년대는 한해 생산량이 2000톤에 달했다.
 

복숭아 축제의 하나인 복숭아 빨리먹기.

이제 부천은 복숭아 축제가 벌어지는 성주산 부천여중 뒷편과 부천시 역곡동의 원미산의 일부인 춘덕산에만 복숭아 과수원이 남아있다. 춘덕산에서는 매년 봄 복숭아꽃 축제가 열려 부천이 복숭아의 명산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부천시가 매년 부천시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 이름이 '복사골 예술제'다. 복사골이란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란 뜻이다. 복사골예술제는 1985년 처음 열렸다. 갑자기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부천에 대한 사랑과 옛 고장의 정취를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주요행사로는 국악제 연극제 무용제 길놀이 가요경연 백일장 사생대회 등이 있다.
◆복숭아 이야기
 예로부터 복숭아를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로 여겨졌다. 복숭아 나뭇가지는 악마를 쫓는 신비한 힘을 가진 나무로 여겨졌다. 정신병이나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때리기도 하였다. 복숭아나뭇가지를 금줄에 달아 대문에 걸면 귀신을 막는다고도 했다. 조상들은 복숭아의 이같은 귀신을 쫓는다는 이미지 때문에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다. 집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도 금기시했다. 복숭아는 연평균 10~15도가 적당하면 토양은 물이 잘 빠지고 뿌리가 뻗을 수 있도록 토층이 깊어야 한다. 기름진 모래 찰흙이나 자갈참흙에서 좋은 과일이 열리고 오래 산다고 한다.
 부천 곳곳에 복사골이 들어간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또 복사골마을, 복사골문화센터 등 복사골이라는 명칭을 곳곳에 사용하면서 부천이 복숭아의 고장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부천시가 시를 상징하는 시목은 복숭아나무이며 꽃은 복숭아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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