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일 오후 3시 서울 가회동 성당에서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렸다. 성당 신부님의 기도와 찬송가로 결혼 의식이 시작됐다. 성당 신부는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가 자신의 물음에 확답을 해야만 결혼미사를 진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이전에는 앞에 서있는 신랑신부에게 “자식을 다섯명까지 낳을꺼지요” 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신랑신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너무 힘들어 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것같아 질문 내용을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 앞에서 결혼 의식을 치르기 위해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신랑은 아무리 힘들거나 싸웠어도 평생 신부와 함께 한 이불을 덮을 겁니까” 신랑이 “예”라고 대답했다. 이어 신부에게 똑같이 물었다. “신부는 아무리 힘들고 언짢아도 신랑과 평생 한 이불을 덮을 겁니까” 신부도 “네”하고 답했다.

신랑신부의 답을 들은 주임신부는 그러면 결혼주례를 계속 하겠다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어’와 ‘사람의 언어’를 잊지 말라고 신랑과 신부에게 당부했다. 하나님의 언어는 다름아닌 ‘사랑’이라면서 부부는 ‘조건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살다보면 학력이나 성격과 재산, 가족관계 등 조건이 불쑥불쑥 튀어나야 부부간의 생활을 방해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의 언어는 ‘감사’라면서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게 감사하고 특히 부부는 서로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축하곡이 이어지고 찬송가로 결혼의식을 끝이 났다. 결혼식 중간중간에 천주교 미사도 진행됐다.
식이 끝나고 피로연으로 자리를 옮기는 나이가 들어보이는 5070세대 하객들은 한 마디씩 멘트를 날렸다. “좋은 날을 이제 끝났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을텐데”라는 농담을 날리는 가하면 “그래 한번 살아봐라 그렇게 되는 지” “과연 신부님은 진짜 결혼 생활의 고충을 아는 걸까” 등등 뼈있는 말이 오고갔다. 이들은 대부분 신랑신부의 장인이자 시아버지의 친구들이자 직장동료, 또는 지인으로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이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20~30년 결혼 생활을 한 중장년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가회동 성당은 연예인인 김태희와 비가 결혼한 장소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이들 부부는 원래 다니던 성당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려 했으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성당을 외국 팬들에게 홍보하고 싶다는 김태희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가회동 성당에서 식을 올렸다고 한다.
가회동 성당은 안국역 사거리에서 헌법재판소쪽으로 직진하면 나온다. 사거리에서 300~400미터 거리다. 서울 북촌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가회동 성당과 한옥과 서양식이 어우러져 건축미가 뛰어나다. 건축관련상을 여러차례 받았다.
성당 안에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조그많게 놓여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인민일보 사무실로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