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인천서 맺어진 조미수호조약 장소는?
1882년 인천서 맺어진 조미수호조약 장소는?
  • 시니어오늘 기자
  • 승인 2017.11.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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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서 서명… 파라다이스호텔, 화도진공원으로 알려져, 4년전 자유공원 아래 위치지도 발견, 현재 웨딩홀
인천 파라다이스호텔에 있는 조미통상수호조약 기념비.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교류는 150년에 이른다. 조선말인 1866년 미국을 처음 만났다. 무력 충돌이었다.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면호가 조선을 무단 침입해 조선은 이를 물리친다. 1871년에는 전쟁 수준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른바 신미양요다. 강화도에서 맞붙은 전투에서 조선군은 처절한 항쟁 끝에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다. 조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서구 외세의 물결이 밀려오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맺고 미국과 공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서양 국가 중 처음 맺은 조약이었다. 그러나 조미수호조약은 형식적이었고 서로에게 득이 없었다. 이후 미국은 조약과 달리 필리핀을 취하는 대신 일본에 조선을 양보, 한일 강제 병합에 일조한다.
 미국과 대한민국이 혈맹이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세계화 전략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 없었고 한국은 미국에 ‘애원 반 협박 반’ 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오늘에 이르렀다.

◆화도진 공원에 조약체결 재현 장면
 조미수호조약은 1882년 5월 22일 당시 인천 해안가 언덕에서 맺어졌다. 그러나 해안가 언덕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오랫동안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파라다이스 호텔과 동구에 있는 화도진 공원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자유공원 밑의 웨딩홀이 확실하다는 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인천항과 멀지 않은 동구 화도진공원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1.3㎞가량 떨어진 파라다이호텔 주차장에도 조약 체결장소를 알리는 다른 기념비가 있다.
 화도진공원에 있는 기념비는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조미수호통상조약 100주년이 된 해인 1982년 12월 14일에 세워졌다.
 기념비 동판에는 '여기 이 유서 깊은 화도진 언덕은 1882년 5월 22일 한미 양국의 대표들이 양국 외교관계의 첫 장을 여는 한미수호통상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한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중략)이 표지석을 다듬어 세운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인천시 지정 기념물 2호인 '화도진(花島鎭)'은 조선시대 고종 16년 7월에 완공된 진지로 서해안 방어를 도맡았던 곳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로도 알려졌다.
 파라다이스호텔에 있는 기념비는 인천향우회와 인천시가 2006년 1월에 세웠다. 기념비에는 '1882년 5월 22일 이곳에서 조선의 전권대신 신헌(申櫶)과 미국의 천권공사 슈펠트(Shufeldt.R.W.) 간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가 두 곳에 세워진 게 확인되면서 지역과 학계에서는 진짜 체결장소가 어디인지를 두고 수년간 논란이 빚어졌다. 조약 체결장소는 그동안 조선시대 세관 역할을 하던 기관인 '인천해관(仁川海關)' 관사라고 전해졌지만, 인천 해관의 정확한 위치를 표기한 지도가 없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지도를 통해 확인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장소. 청일조계지계단으로 올라오는 곳으로 지금은 웨딩홀이 들어서 있다.

◆2013년 위치 알려주는 지도 발견
 2013년 정확한 체결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됐다. 인천해관 문서 중 인천해관 세무사공관 위치가 표기된 옛 제물포 지역 지도가 발견된 것이다. 세무사공관 위치는 화도진도, 파라다이스호텔도 아니었다. 그곳은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번지 자유공원 입구 부근이었다. 지금은 웨딩홀이 자리하고 있다.
 인천시는 조약체결 장소를 알리는 가장 유력한 자료가 발견됨에 따라 내년 이들 기념비를 모두 철거하고 자유공원 입구 지역에 기념비를 새로 세울 계획이다. 그러나 기존 기념비를 철거하는 데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동구가 2015년부터 매년 화도진공원에서 개최하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재현식'이 지역행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동구는 매년 화도진 공원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 재현식을 갖는다. 시민단체와 역사전문가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동구는 조약 재현 등 화도진 축제를 지역의 대표행사로 만들어가고 있다.

조미수호조약 재현 행사 취소 논란
시민단체와 인천역사전문가들은 지도로 명백하게 위치가 밝혀진만큼 화도진에서 벌어지는 조미수호조약재현행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가 그동안 화도진공원이나 올림포스호텔 자리인 것으로 추정됐다"며 "그러나 구한말 조약 체결장소가 표기된 지도가 수년 전에 발견되면서 중구 자유공원이 가장 유력한 지역으로 지목됐다"고 설명했다.
인천역사자료관의 강옥엽 전문위원은 "기념비가 여러 곳에 있는 탓에 시민들은 정확한 조약 체결장소를 알 길이 없었다"며 "화도진에 있는 기념비를 철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정확한 장소를 나타내는 자료가 나온 만큼 기념비 위치를 바로잡고 그간의 경위를 시민에게 알리는 게 역사를 대하는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도진 축제를 매년 해오고 있는 인천시 동구측 "조약 체결장소에 대한 내용은 학계에서 계속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현식은 조약 체결장소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축제의 한 콘텐츠로서 마련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며 재현식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화도진공원에 있는 조미통상수호조약 재현 장면.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첫 만남
 미국과의 첫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1866년에 미국 무역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미국인 선원들은 무역에 필요한 서양 물건을 비롯해 대포와 총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했다. 조선 정부는 다른 나라와의 통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항구에 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한 뒤 조선에서 빨리 떠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제너럴셔먼호의 선원들은 경고를 무시하고 평양에 들어왔다. 평양의 관리나 주민들은 이들의 불법 행동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우리의 전통 예절에 따라 세 차례나 음식물을 가져다 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제너럴셔먼호 선원들은 조선의 관리들을 잡아 가둔 뒤 이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쌀과 금, 은, 인삼 등을 요구했다. 또한 총을 쏘아 민간인을 죽이기도 했다. 평양의 관리들과 백성들을 이들의 만행에 분노해 제너럴셔먼호를 공격하고 불태워 격침시켰다. 이로 인해 제너럴셔먼호 승무원들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인해 조선에서는 서양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높아졌다. 이후 흥선 대원군은 서양과의 교류를 일절 거부하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다. 한편, 미국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신미양요 때는 이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구실로 강화도를 침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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