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30년… 인천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다
인천 서구 30년… 인천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다
  • 시니어오늘 기자
  • 승인 2018.01.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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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국제도시는 명품도시로 발전 중, 면적의 상당수는 갯벌 매립지
인천 서구의 대표적 명소인 정서진.

인천시 서구가 올해로 탄생한 지 30년이 되었다. 서구는 1988년 1월 인천시 북구에서 분구됐다. 분구 당시 인천의 변두리였던 서구는 30년만에 인천을 이끄는 구가 되었고 앞으로도 인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끌 지역으로 성장했다. 청라국제도시가 자리잡았으며 경인아라뱃길, 인천공항철도 등,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등 2014년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 서구에 자리잡았다. 인천시청사 이전 때면 항상 서구가 거론될 정도였다. 앞으로도 당분간 서구의 미래는 창창하다.
 ◆인천 최고의 유망 지역으로
 서구는 지난 30년간 승승장구했다. 출발 당시 인천의 별볼일 없는 변두리였으나 이제는 인천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고 큰집격인 부평구보다 훨씬 유망한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인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청라국제도시는 서구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2014 아시아 경기를 치르기 위해 주경기장이 서구에 건립되고 도시철도 2호선 건설과 세계 최초 로봇 테마파크인 로봇랜드가 조성되는 등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청라IC와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 개통, 청라 서울 강서간 간선급행버스(BRT) 운행 등을 통해 국내·외 교통의 요충지로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서해바다와 한강을 잇는 경인아라뱃길 개통과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 명소인 정서진은 세어도와 더불어 서구를 알리는 자연·문화·해양 관광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2011년부터 개최된 정서진 축제는 서해의 관광도시로 성장하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등 서구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서구는 이제 인천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주목받는 명품도시로 도약하고 있다.
 서구는 역사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수령이 500년 넘는 회화나무가 있으며 경서동에 녹청자도요지가 있다. 대곡동 지석묘 등 인천 기념물도 상당수다. 서곶들노래, 판소리고법, 휘모리잡가 등은 인천 무형문화재다. 인천 개항을 앞두고 해안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연희진터가 있다. 인천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계양산과 원적산, 철마산도 서구에 걸쳐있다.
 서구의 인구는 2017년 52만 6500여명이며 면적은 137.12㎢다. 1년 예산은 5700억원이며 공무원은 1000여명이다. 168개의 초중고교가 있다. 강범석 서구청장은 특히 지역주민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최근 아동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서구의 역사
 서구는 오랜 세월 동안 인접한 부평, 김포, 계양, 부천 등의 행정 단위로 있다가 인천으로 편입된 이후 1988년 1월 ‘서구’라는 독립된 행정단위로 출발했다.
 현재의 서구는 지난날 서곶(西串)과 검단(黔丹)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1995년 김포 검단이 서구에 편입되기 전 서구는 지난날 서곶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서곶 지명은 군소재지인 부평에서 서쪽 해안에 길게 뻗어있으므로 그렇게 지어졌다. 서곶은‘서쪽으 로 길게 뻗은 해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곶은 오늘 인천 중심가에서 보면 서쪽이 아니라 북쪽에 위치한다. 그런데 서곶이 된 것은 이 지역이 부평군에 속해있던 시기에 부평중심으로 명명되었기 때문이다.
 서곶이라는 지명은 속칭 돌곶이를 한자어로 표기한것이다. 이곳의 지형이 꼬챙이 같이 길게뻗어있으 며 돌이많다고 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
 서곶출장소는 1968년 인천이 구제(區制)를 실시하면서 북구에 편입되었다. 1988년에 전체 서곶지역이 서구로 독립되었으나 서곶이라는 유서 깊은 지명은 1968년 구제 실시와 함께 내무행정의 지명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서곶초등학교와 서곶중학교의 학교 이름 속에, 그리고 민간의 고유명사 속에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서곶은 길게 해안을 끼고 있어 라연안에 크고작은 수많은 섬들이 있었다. 청라도(靑羅島 파렴), 사도(蛇島, 뱀섬), 일도(一島), 장도(獐島노렴), 곰의바위, 쟁끼섬, 까투렴, 율도(栗島, 밤염) 소염도(小鹽島), 세어도(細於島), 장금도, 목섬, 호도(虎島, 범염) 등이 그것이다. 서곶의 앞바다는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물과 썰물이 빠르게 드나들었다. 그러나 이섬들은 갯벌매립으로 거의 모두 사라졌다. 1차로 원창동과 석남동 앞바다가 매립되어 율도와 소염도가 사라졌으며, 2차로 검단지역 앞바다와 백석동, 검암동, 연희동 앞바다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 청라매립지에 포함되면서 세어도를 제외한 청라도, 일도, 장도등 거의 모든 섬들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 매립사업으로 인해서 곶의 면적은 원래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연희동에는 수군기지인 연희진(連喜鎭)과 해안포대가 있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뒤에 서해로 침범해오는 서구 열강의 함선을 격파하기 위해 1878년에 만든 것으로서 연희진은 연희동 247번지에 있었다. 서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청라의 패총유적과 검단 선사유적지 등을 통해 볼 때 수천 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명품 국제도시가 되어가는 서구 청라.

◆청라, 서구 인천 대한민국의 명소로
청라경제구역 일대는 오랫동안 갯벌이었다. 1991년 간척사업이 준공되면서 청라도가 육지가 되었으며,그 매립지를 동아건설에서 공사을 시행하였다 하여, 동아매립지라 불리어 왔다. 2003년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되면서 청라도의 역사성을 이어받고 “세계의 푸른 보석”이 되라는 의미로 “청라 지구”라 칭하고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로 지정되었다. 2011년 9월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국제도시"로 명칭이 변경되었음. 청라의 유래는 청라지구 서해안쪽에 조그마한 섬(해발 67.7m, 해안선 길이 5km, 면적 0.79㎢)이 있었는데 푸른 넝쿨과 관목들이 무수히 많아 푸른섬이라는 뜻으로 “청라도(靑羅島)”라 불이었다 하며, 서곶 주민들이 청라도가 유난히 푸른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파란섬이라는 뜻으로 “파렴”이라고도 불렀다고 함. 지난해 청라동에 생겨나게 되어 주민들의 행정이 한결 편리해졌다.
◆서구 상징물은 까치 은행나무
서구의 상징물은 까치다. 인천의 ‘어질 인(仁)’자를 모티브로 해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뜻하며, 마을 주민 서로가 하나로 어우러져 화합함으로써, 선진 서구의 건설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기상을 표현하

서구 검단선사박물관 전시물.

고 있다. 구 캐릭터는 서동이다. 서구에서 동이 터 오는 것처럼 새로운 21세기에 활기차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개척해 나아간다는 뜻과 아름다운 고장 서구를 의미하고 선진 서구를 건설하기 위해 적극적 이고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서구민의 모습을 표현함.구를 상징하는 나무는 은행나무로 강인한 의지와 무궁한 발전을 상징한다. 동물은 사슴으로 평화와 사랑, 인내를 나타낸다. 구의 꽃은 국화로 안정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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