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황해문화’, 한국을 뒤흔들다
인천 ‘황해문화’, 한국을 뒤흔들다
  • 시니어오늘 기자
  • 승인 2018.02.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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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괴물’로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 확산에 기름부어, 25년간 예민한 사회 이슈 다뤄온 여론독자층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표지.

‘황해문화’는 인천에 있는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계간지다. 1993년 창간돼 25년간 발행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노동 다문화 여성 동성애 등 쉽지않은 이슈를 주로 다뤄온 색깔있는 잡지다. 지난 2017년 겨울호(통권97호)는 ‘페미니즘과 젠더’ 특집을 실었다. 이 특집에 실린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란 시가 2018년 2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피해 경험을 전하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시인은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쓴 이름이 나름 알려진 유명작가이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로 시작한다. 최 시인은 성추행을 일삼는 시인의 이름을 정확히 밝히진 않았다. 그러나 영어 이름표기, ‘노털상’(노벨상을 일컫는 듯한 시어), ‘30년 선배’ ‘100권의 시집’ 등 구체적인 묘사로 인해 당사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시는 검사들의 잇단 성추행 폭로로 일기 시작한 미투 운동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당초 법조계의 여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의 불길이 붙더니 바로 문학계로 옮겨져 최근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일부 문학인들은 해당 시인을 거론하며 “터질게 터졌다”며 문학계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등단이나 수상 등을 미끼로 여성 문인 지망생과 여성 문인들에게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원칙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황해문화’는 지난해 9월에 겨울호 특집을 준비하면서 최영미 시인에게 작품을 부탁했다. 이례적으로 필자들에게 ‘페미니즘과 젠더’ 라는 특집 주제를 알렸으며 주제를 미리 알린 경우는 잡지가 발간된 이래 처음이었다고 했다.
‘황해문화’는 최 시인의 작품을 받고 전체 편집위원이 참여하는 편집회의에 안건으로 올렸고, 만장일치로 게재를 결정했다. 책 발행 후 한동안 크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 얼마전 법조계의 잇단 폭로가 시발점이 되었다. 황해문화는 올해 100회 특집을 준비 중이다.
‘황해문화’는 일반 대중잡지에 비해 다소 전문적이고 심층적이어서 오피니언 리더들이 주독자층이다. '지식 담론의 공론장' 역할을 자처하며 다양한 사회 현상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정기 구독자가 4000여명이며 매번 5000여권을 발행해 전국 대학과 공공도서관, 연구기관, 서점 등에 배포한다.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해 캐나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외국 기관에도 보낸다. 한편 작품에 등장하는 시인을 인문학 멘토로 여기고 문학관을 추진하던 수원시는 주민의 반발 등을 우려해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이두 기자

시 '괴물' 전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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