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을지로에 있는 국민문화연구원은 판소리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지도하는 곳이다. 연구원의 이용수(73) 원장은 국민은행 지점장 출신이다. 그는 20여년전 퇴직 후 평소 즐기던 판소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펼쳐 퇴직후 인생 진로를 고민하는 중장년들에게 새로운 모델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전북 정읍 국민은행 지점장이었다. 은행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도 조직에서 밀려남, 고객과의 관계정리, 가정 생활비 조달, 자녀 결혼 등 숱한 문제를 떠올렸지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그는 판소리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동편제의 고향인 전북 남원 운봉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판소리를 접했다.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판소리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판소리 대가였던 조상현 선생에게 춘향가와 심청가를, 정광수 선생에게 적벽가를 배웠다. 40년 이상 판소리 다섯 바탕을 공부해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가 되었다. 지점장으로 근무할 당시 정읍국악교실을 열어 판소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산에 올라 등산객에게 무료 강습을 했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판소리에 매달렸다. 판소리 연구원을 개설했고 강의는 물론 판소리 관련 책을 내기도 했다. ‘명성황후의 혼불’‘2002 한일 월드컵’‘왕과 장금’ 등 10편의 민족적 내용을 담은 판소리를 스스로 창작해 공연했다. 지금도 판소리 창작과 공연, 책 집필 등으로 은행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장년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퇴직후 처음에는 은행 지점장에 비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판소리를 하니 하루가 즐거웠다고 했다.
그는 최근 판소리의 모든 것을 소개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한민족’이라는 책을 펴냈다. 판소리 속에 구구절절 배어있는 한민족의 생생한 역사를 소개했다. 판소리 춘향가의 원모델은 고구려 흥안태자(22대 안장왕)였고, 춘향이는 백제의 한주였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도령의 본명은 원홍장이라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는 판소리는 우리 한민족의 통일 음악으로 지리적, 계급적,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누구나 부를 수 있는 통일음악이라고 했다. 또한 판소리는 우리 국민이 21세기를 살아나가는 데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링의 원조이며, 장차 우리 나라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