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의 SK건설은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평동에 현대화된 대규모 중고차 매매단지인 ‘수원 SK V1 모터스’를 분양한다고 최근 밝혔다. 해당 부지는 SK그룹 모태인 선경직물 공장이 위치했던 곳이다. SK는 선경(Sun Kyong)의 앞 알파벳을 딴 것이다.
단지가 들어서는 수원시는 국내 중고차산업의 중심지 중 하나로 중고차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현재도 10여 곳의 중대형 매매단지가 있고, 영세 사업자들도 밀집해 있다. 지난 한 해 거래 규모도 13만8000여대에 달할 정도로 시장규모도 크다. 월평균 판매대수와 종사자 수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SK건설은 분양홍보관을 열고 본격적인 분양에 나선다. 홍보관은 수원시 호매실로 46-16(경기종합노동복지회관 3층)에 위치해 있다.
수원은 SK그룹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선만주단과 일본의 경도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1943년 선경직물은 경기 수원시에 공장을 세웠다. SK그룹의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은 1944년 선경직물 수원공장 견습 기사로 입사했다. 1946년 최 회장은 공장 생산 부장으로 임명됐다. 해방 이후 일제가 쫓겨난 뒤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과 기업은 정부에 귀속됐다. 선경직물도 1948년부터 정부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1956년 최 회장은 선경직물을 인수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500만 환이었다. 1962년 선경직물은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5000만 원으로 늘렸다. 8월 무역업을 목적으로 하는 선경산업을 설립했다. 이 해 11월 미국 유학을 마친 최종건 회장의 동생 최종현 씨가 회사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1966년 선경화섬(주)을, 1969년 7월 일본의 데이진주식회사와 합작법인 선경합섬(주)을, 1970년 1월 선산섬유(주)를 각각 세웠다. 1970년 12월 선경직물이 선경산업을 흡수합병했다. 같은 해 9월 선산직물이 선일섬유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2년 11월 서해개발을 설립했다. 1973년 1월 선경개발을 세웠다. 3월에는 선경개발이 워커힐 호텔을 인수하며 호텔 사업에 진출했다. 7월 선경석유를 설립했다. 같은 해 11월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이 타계하고 동생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회장 및 선경화섬, 선경합섬 사장에 취임했다.
1974년 11월 선경직물과 선일섬유가 업무합병했다. 1975년 8월 선경직물의 영문상호를 'Sunkyong Limited'로 변경했다. 1977년 1월 선경직물이 선일섬유를 흡수합병하고 상호를 (주)선경으로 변경했다. 2월에는 선경합섬이 선경화섬을 흡수·합병했다. 10월 선경화학을 세웠다. 11월에는 (주)선경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되었으며, 자전차 제조업체인 신원을 인수하여 선경금속을 설립했다. 1978년 8월 '협우산업'을 인수하여 선경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9년 6월 '산양여행사'를 인수한 뒤 워커힐여행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0년 선경은 정부가 민영화 방침을 밝힌 대한석유공사(유공)의 주식 50%를 인수하며 석유사업에 뛰어들었다. 선경은 같은 달 석유제품 판매회사인 흥국상사도 합병했다. 1982년 1월 유공해운을 세웠다. 대한석유공사는 1982년 7월 유공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3년 6월 선경합섬의 합작사인 일본의 데이진(주)이 철수했다. 1984년 3월 선경종합건설이 선경건설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5년 12월 유공가스를 세웠다. 1994년 정부는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선경그룹은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1997년 3월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그 해 10월 유공은 SK(주)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이때를 전후하여 선경그룹의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선경' 글자가 들어간 회사명을 'SK'로 바꾸고 로고를 통합시키기 시작했으며, SK해운, SK에너지판매, SK가스, SK옥시케미칼, SK생명 등이 신(新) CI선포식을 가졌다.1998년 1월 선경그룹도 SK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해 8월 최종현 회장이 타계하고,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2001년 1월 정보통신부가 신세기통신과 SK텔레콤의 합병을 승인했다.
2007년 SK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다. SK(주)에서 에너지 분야를 떼어내 SK에너지를 새로 만들고, 기존의 SK(주)는 그룹 지주회사로 역할을 바꿨다.

◆수원시민과 함께 하는 선경도서관
수원시 팔달구 팔달산 자락에 선경도서관이 있다. 1993년 선경그룹이 공사비 250억원을 들여 1만1000㎡의 땅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지었다. 1995년 완공돼 수원시에 기부한다. 개관당시 1500석의 좌석과 5만여권의 장서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40만권이 넘는 책이 있어 수원시민들의 양식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선경도서관은 일반 열람실과 자료 대출실, 수원학자료실 등으로 갖춰져 있다. 도서관은 향토자료실을 리모델링해 수원학자료실로 꾸몄다. 일반도서관과 다른 점이 바로 수원학자료실이다. 이 곳에는 수원의 향토와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있다. 개인이 기증한 자료와 책 수천점은 수원의 역사는 물론이고 각종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들이다.
선경도서관은 수원을 알리기 위한 각종 전시와 세미나등도 종종 연다. 얼마전에는 ‘근대 수원, 문학 공간 속의 인물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수원 출신의 김광주, 박승극, 박팔양, 홍성원 등을 조명한 전시가 진행됐다. 전시는 근대 수원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김광주는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수원 신풍동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단편 ‘밤이 깊어갈 때’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전시에는 1961년~1963년 연재한 무협소설 <정협지>의 초판을 비롯해 <흑룡전>, 수필집 <춘우송> 등 김광주의 대표작이 있다. 운보 김기창이 그린 <정협지> 표지 그림을 주목할 만하다.
박팔양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신의 주’(1923)로 등단한 시인이다. 만주에 머물던 박팔양은 해방 후 북한에 남은 월북 작가다. 전시작 <태양을 등진 거리>는 모더니즘과 프롤레타리아 문학 특성을 반영했고, <한국시인집>은 김소월·김억·조명희 등의 작품이 함께 수록했다. 수원학자료실에는 지역작가코너가 별도로 있다.
◆수원에 SK그룹 창업주 생가… 선경직물 흔적 남아있어
수원시 평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의 생가가 있다. 수원역에서 택시로 불과 5분정도 거리다. 최종건 생가는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이 출범한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만 해도 이곳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중 하나였다. 당시는 출퇴근 하는 2000여명 선경직물 직원들로 2차선 도로가 가득 찼다. 그 당시 선경직물이 수원을 먹여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선경직물 공장은 오래전에 가동을 멈췄고 극히 일부만이 평동에 있다. 직물기 일부는 대구 섬유단지와 중국, 동남아 등으로 뜯겨져 팔렸다고 한다. 생가는 대지 390여평에 자 한옥 한 채 남았다. 대청마루와 안방에는 자개장, 재봉틀 등 최종건 부부가 사용했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최종건 회장은 1973년 겨우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경영권을 동생인 최종현에게 물려줬다. 최종현 회장은 통신, 에너지, 유통 등을 망라하는 오늘의 SK그룹으로 키워냈다. 최종현 회장 사망후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수장이 되었다. 창업주 최종건의 부친은 최학배로 화성 팔탄 출신이었다. 결혼하면서 수원시 평동에 자리잡는다. 그는 평동에서 대성상회라는 미곡상을 하며 돈을 모은다. 광복후에는 수원시의원을 지냈다.